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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에 기생하기, 삶 기생하기 #1

그 시절에 기생하기, 삶 기생하기 #1


애초 흰색이었을 것 같은 페인트칠이 여기저기 벗겨져 있는 허름한 삼층짜리 네모난 건물은 [신학생회관]이란 이름으로 불리었다. ‘신新’이라는 한자어가 ‘새롭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 건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문자 하나를 누군가 의미 없이 붙여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술기운 가득 오른 불그레한 눈으로 쳐다본들 ‘멋’이라곤 손등에 낀 때 자국만큼도 느낄 수 없었던 그 콘크리트 덩어리의 지하층 오른쪽 끝에는, 언제나 문이 열려 있었던 [000 문학 동아리]의 아지트가 덩그러니 박혀 있었다. 어떤 특정한 목적이나 거창한 의식이 있어 문을 열어 두었다기보다는 굳이 문을 닫아두어야 할 어떤 이유가 없었기에, 문이 닫히는 것과 열리는 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신경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하긴 가진 것이라곤 표지 낡고 중간중간 한 두 페이지 뜯겨 나간 손때 묻은 책 몇 백 권과 그것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선반의 가운데 부분이 휘어져 내려앉은 싸구려 책장 몇 개에,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기다란 나무의자 네 개 그리고 동아리방 가운데를 그 공간의 주인인양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는 합판 테이블 두 개, 앉으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몇 개의 일인용 나무 의자와 벽면에 세워져 있는 잠금장치가 떨어져 나간 철재 캐비닛 여덟 개가 전부였으니 혹시 뭔가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일랑은 애초부터 쓸 때 없는 짓일 뿐이었다.


하루 종일 문을 열어 두어도 퀴퀴한 곰팡내가 사라지지 않았던 그 동아리 방에 빌붙어서, 호흡을 들이켜고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태워 마시고, 기타를 치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눈빛 반짝이며 책을 읽고 뭔가를 긁쩍이고, 담배연기를 뿜어내고 깡소주를 마시며 살아가던 암울하긴 하였지만, 그래서 행복했던 시절이 나에게 있었다.


나와 그 동아리방의 관계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보면 둘 중에 어느 하나는 기생하는 개체였고 다른 하나는 기생당하는 개체, 숙주였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동아리방에 기생을 한 것이건 동아리방이 나에게 기생을 한 것이건, 어느 것이 어느 것에 기생을 당한 것이건, 세월 지난 지금에 와서 그 역할을 따지는 것은 한낱 부질없는 짓일 뿐이란 것을 안다.

하지만 그 관계가 어찌 된 것이건 간에 ‘기생’이란 표현은 분명 그 시절의 나와 그 동아리 방을 끈끈하고도 진하게 연결시켜 주는, 오래 비워둔 방의 창에 가득 낀 치렁치렁한 거미줄과도 같은 것, 그래서 떠올릴수록 더욱 감겨드는 것임에 틀림없다.


가끔은,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도,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 참, 그때 알지 못했던 어떤 것들은 지금도 여전히 알지 못하고 있다니, 이미 길고 긴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겪었다고 여기고 있건만 뭔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더 질긴 인내가 필요한 것인가 보다.”


“얼마나 더 살아가야만 그것들을 제대로 알게 될까.”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질문과 그 답을 찾아가는 험난한 과정이란 것만은, 다행스럽게도, 어느 정도 알아차리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by Dr. Franz KO(고일석, Professor, Dongguk University(for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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