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성 마태의 순교>에서 카라바의 이중 초상

12. <성 마태의 순교>의 그림 속 어린아이와 카라바조의 이중 초상에 대해


그림의 오른쪽 끝부분에는 몹시 놀란 듯 황급하게 달아나고 있는 한 어린아이가 그려져 있다. 그림 속의 다른 등장인물들과 비교해 보면 이제 겨우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이 어린 소년을 카라바조 연구자들은 성 마태의 시중을 들던 시종으로 보고 있다. 내용 상으로 보면 타당한 것 같아 보인다.


성 마태의 순교에서 소년.JPG <성 마태의 순교>에서 소년


소년의 표정과 동작이 어딘지 낯이 익다. 비명을 지르고 있는 듯 입을 벌린 채로 허공을 향해 팔을 저으며 황급히 달아나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서 카라바조의 1602년 작품인 <그리스도의 체포(The taking of Christ), 1602>에서 병사들에게 체포되고 있는 스승을 버리고 도망치는 예수의 제자 요한을 떠올리게 된다.

제자 요한 달아나고 있는.JPG <그리스도의 체포>에서 예수를 버리고 달아나고 있는 제자 요한


<성 마태의 순교>에 나오는 어린아이와 <그리스도의 체포>에 나오는 제자 요한은 ‘놀라는 표정’과 ‘달아나는 동작’이 서로 닮아 있긴 하지만 전혀 다른 시야와 관점으로 이 두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

<성 마태의 순교>에 나오는 소년은 성 마태의 시중을 들던 한낱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어떤 일에 대한 반응에 있어 어린아이의 그것과 성인의 그것은, 그 정도만이 아니라 외면적으로 표출되는 행위 자체가 다르기 마련이다.

어린아이는 성인에 비해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존재이다. 따라서 어린아이의 반응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지만, 성인의 반응은 상황적인 여건에 따른 자신의 의지가 반영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성인의 반응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에 비해 훨씬 복합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아이가 저지르는 행동과 말은, 그것에 따른 결과와 상관없이, 대체로 너그러운 용서를 얻을 수 있지만 성인의 그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과 대가가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성 마태의 순교>에 등장하고 있는 이 어린아이는 자신이 섬기던 성인이 암살당하는 끔찍한 사건을 직접적으로 목격하게 된다. 커다란 칼을 든 자객이 갑작스럽게 교회 안으로 난입하여 성 마태에게 칼을 휘둘렀고, 그 칼에 맞은 성 마태가 피를 쏟으며 바닥에 쓰러지는 참혹하고 황망한 장면을 자신의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였으니, 어린아이가 받았을 충격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다. 그래서 그림을 감상하는 관객은 이 어린아이에게 안타까움과 측은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시 두 개의 그림에서 어린아이와 제자 요한을 비교해보면 <성 마태의 순교> 속의 어린아이에서는 공포가 느껴지지만 <그리스도의 체포> 속의 제자 요한에서는 삶에 대한 의지가 느껴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카라바조가 왜 이 어린아이를 그의 작품 <성 마태의 순교> 안에 그려 넣었는지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아이의 표정과 행동에는 카라바조의 어떤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봐야 한다.

카라바조는 어째서 이제 갓 열 살 정도나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성 마태의 시중을 들었을 거라고,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로 하여금 여기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이 소년은 정말 성 마태의 시종이었을까. 복음의 전파에 바빴을 성 마태의 시중을 제대로 들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십 대 후반 이상의 성인 남자를 시종으로 삼아야 했던 것은 아닐까. 더 큰 의문은 대체 어떤 이유로 이 어린 사내아이가 자신이 섬기고 따르던 성인이 암살당하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장면을 목격하도록 한 것일까.

자객의 뒤편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카라바조의 표정을 살펴보면 한 가지 힌트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림 속의 카라바조는 대체 무엇을 저리도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기존 연구자들의 표현처럼 그의 눈이 향하고 있는 곳은 자객에게 암살당하고 있는 성 마태인 것일까. 카라바조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인정하고 있는 성인의 순교 장면을, 그것이 단지 죽음이라는 세속적인 이유로 인해, 저런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카라바조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어린아이에게 남았을 엄청난 트라우마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의 카라바조와 그림 속의 카라바조가 가장 측은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어린아이인 것은 아닐까. 대체 이 어린아이는 누구인 것일까.


‘어린아이의 반응은 자신의 본능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은, 어린아이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가장 귀를 잘 기울일 수 있고, 그것에 대해 꾸밈없이 반응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카라바조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겪었던 죽음의 공포를, 그것과 직면했을 당시에는, 장남이라는 태생적 무게와 집안의 형편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깊숙이 억압해 두어야만 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삶의 행적을 살펴보면 카라바조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죽음의 트라우마로 인해 평생을 시달리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성 마태의 순교>에서 비명을 지르며 놀라 달아나고 있는 이 어린아이는 또 다른 카라바조 자신이라 할 수 있다. 즉 카라바조는 <성 마태의 순교>에 그림을 그리던 시점의 성인 카라바조만이 아니라, 카라바조의 내면에서 억눌린 채 숨어 지내야만 했던 어린 시절의 카라바조를 그려 넣은 것은 것이다. 그림 속의 어린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떨며 달아나는 모습은,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하진 못했지만 분명 그렇게 했어야만 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인 것이다.


카라바조의 <성 마태의 순교>는 어린 시절의 카라바조와 성인이 된 카라바조의 두 개의 초상을 만나볼 수 있는, 카라바조를 진정으로 아끼는 이들에게는 카라바조의 트라우마와 심리상태를 더듬어 볼 수 있는 명작 중에 명작이라 할 수 있다.


by Dr. Franz KO(고일석), Professor, Dongguk University(for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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