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의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 작품 해설 -1

- 카라바조의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 - 해설과 제작 배경

1592년, 카라바조의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 - 해설과 제작 배경

카라바조의 작품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 또는 <과일 껍질을 깎는 소년>(Boy Peeling Fruit)은 카라바조가 1592-1593년경에 그린 그림으로 아래의 표와 같이 현재 영국 런던에 2점과 이탈리아 피렌체 및 스위스에 각각 1점씩이 소장되어 있다.

카라바조의 작품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 목록


카라바조의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피렌체 롱기 컬렉션 버전)

Boy Peeling Fruit, c.1592–1593, 75.5cm×64.4cm, Florence, Fondazione Roberto Longhi


카라바조의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런던 로열 컬렉션 버전)

Boy Peeling Fruit, c.1592–1593, 63cm×53cm

London, Picture Gallery, Buckingham Palace – The Royal Collection


카라바조의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스위스 버전)

Boy Peeling Fruit, c.1592–1593, 65cm×52cm

Switzerland, Private collection (formerly Ishizuka Collection, Tokyo)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은 여러 다른 버전의 작품이 알려져 있으며 모두 카라바조의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서 영문 자료에서는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One of several versions, one of which is Caravaggio's earliest known work, (카라바조의 초기 작품 중에 하나로서 여러 버전 중에 하나이다.)

카라바조의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이 여러 가지 버전으로 그려진 이유는 당시 유명 화실들이 공방 식으로 운영하며 그림을 판매하였기 때문이다.

카라바조가 이 그림을 그렸을 때는 밀라노를 떠나 온 그가 로마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초기였다.


이 시기에 카라바조는 주세페 체사리의 화실에 머물면서 꽃과 과일을 주제로 여러 작품들을 그렸다. 당시 로마에서는 꽃과 과일을 그린 그림이 가장 인기 있고 수요가 많았다.

카라바조가 그린 그림들은 다른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과 함께 주세페 체사리의 화실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가 구매자를 만나 판매가 되면 동일한(또는 비슷한) 그림을 추가적으로 그려 전시하고 다시 판매하기를 반복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이 여러 가지 버전이 남아 있다는 것은, 더 많은 버전이 그려졌을 것이고, 이는 당시 이 그림이 그만큼 잘 팔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그림들 중에서 어느 것이 프로토타입(원형, 원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쩌면 남아 있는 작품들 중에 하나가 프로토타입일 수도 있고, 또는 프로토타입은 이미 소실되었으며 지금 남아 있는 버전들은 모두가 사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연구자들에 따라서는 스위스(Switzerland)에 있는 개인 컬렉션인 <Ishizuka> 버전이나 <영국 로열 컬렉션>(British Royal Collection) 버전이 프로토타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황홀경에 빠진 성 프란치스코>

<Ecstasy of Saint Francis>, c.1595, 92.5cm × 127.8cm,

Wadsworth Atheneum, Hartford, Connecticut, USA

<젊은 음악가들>

<The Musicians>(Young Musicin or Concert of Youths), c.1595,

92cm × 118.5cm, Metropolitan Museum of Art(MoMA), New York, USA

1592년 작인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에 나오는 모델은 카라바조의 또 다른 작품들인 <황홀경에 빠진 성 프란치스코>(Ecstasy of Saint Francis, c.1595)에서 성 프란치스코를 안고 있는 천사와, <젊은 음악가들>(The Musicians, Young Musicin, Concert of Youths, c.1595)에서 맨 왼쪽 뒷부분에 그려져 있는 큐피드로 분장한 소년과 닮았다고 보고 있다.

이들 세 작품이 그려진 것에는 약 3년 이란 시간적 틈새가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그림 속 모델들에서 닮은 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제작 배경에 대해


카라바조의 로마에서의 초창기 행적에 대해서는 신뢰할만한 있는 자료가 남아있질 않지만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은 카라바조가 1592년 중반에 밀라노를 떠나 로마에 도착한 직후에 그린 것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카라바조의 작품 중에서 가장 초기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작품들의 제작 연도에 c.1592–1593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용한 'c.'는 라틴어에서 온 것이며 연도와 함께 쓰여 ‘약’ 또는 ‘경’을 나타내는 ‘circa'의 약자이다.


카라바조(1571–1610)와 동시대에 살았던 예술품 수집가이자 예술사학자였던 줄리아노 만치니(Giulio Mancini, 줄리오 만시니, 1559 Siena – 1630 Rome)에 따르면 그는 판둘포 푸치(Monsignor Pandulfo Pucci)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그림을 그렸지만 푸치가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싫어서 몇 달 후에 떠났다.

카라바조에 대한 기록을 남긴 줄리아노 만치니는 당대의 저명한 의사로서 교황 우르바노 8세(Pope Urban VIII, 재위: 5 April 1568 – 29 July 1644)의 개인 주치의였을 뿐만 아니라 ‘예술 세계에 매료된’ 교양과 학식을 갖춘 부유한 예술 애호가였다.


그의 기록을 보면 카라바조가 푸치에게서 제공받은 식사라곤 채소가 거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카라바조는 푸치를 '몬시뇰 샐러드'라고 불렀다고 한다.

몬시뇰(monsignor)이란 단어는 원래는 '나의 (mon (mio))'와 '주님(seigneur (signore))'의 합성어로서 가톨릭에서 교황이나 대주교, 대 수도원장 또는 교황청의 고위 성직자를 나타내는 존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몬시뇰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그 사람이 “안 그래도 될 만한 것에 대해 괜히 진지하고 엄숙하다.”거나 “쓸데없이 근엄하다.”고 희화화하거나 농담조의 의미가 담겨지게 된다.

따라서 카라바조가 푸치를 몬시뇰 샐러드라고 불렀다는 것은, 푸치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카라바조가 푸치의 집에 머물면서 한 일은 주로 다른 화가의 종교화를 베끼는(복사하는) 것이었지만 이 작품들 중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푸치가 카라바조를 단지 ‘모작 작가’ 수준으로 취급하였다는 것을 통해 푸치의 예술적인 소양이 깊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카라바조가 이 시기에 그린 작품들은 어딘가에 남아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카라바조의 작품인지 모른 채로 그저 ‘오래된 모작’ 정도로만 취급되고 있을 수도 있다.

모작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젊은 날의 카라바조가 ‘먹고 살기 위해’ 그린 작품이라면 전혀 다른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

카라바조의 이후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가 푸치에 집에 머물던 당시에도 개인적인 판매를 목적으로 몇 점의 작품을 그렸던 것으로 보이지만 이 또한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을 그린 것은 카라바조가 푸치의 집을 나와 주세페 체사리(Giuseppe Cesari, Cavalier d'Arpino, 1568–1640)가 운영하는 화실에서 일하기 시작한 때보다 약간 늦은 시기라고 보고 있다. 카라바조 체사리의 화실에서 한 일은 주로 ‘꽃과 과일’을 그리는 일이었다.

카라바조는 당시의 일에 대해 “오직 꽃과 과일만을 그렸다.”라고 말을 하고 있다.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은 화실 밖에서 개인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그린 작품이었다.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607년에 쉬피오네 보르게세(Scipione Borghese, 1577–1633) 추기경이 카라바조의 다른 두 개의 초기 작품인 <병든 바쿠스>(Young Sick Bacchus, c.1593) 및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Boy with the Basket of Fruit, c.1593)과 함께 체사리(d'Alpino)의 컬렉션으로부터 입수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라바조가 개인적으로 화실 밖에서 판매할 목적으로 그린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이 어떤 이유로 체사리의 컬렉션이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카라바조, 가면과 페르소나의 미학> by Dr. Franz Ko(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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