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성 마태의 순교>에 나타난 카라바조

11. <성 마태의 순교>에 나타난 카라바조


<성 마태의 순교>에서 카라바조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이면서 또한 성인의 순교를 목격하고 있는 목격자이기도 하다.


성 마태의 순교세서 그림 속의 카라바조.JPG <성 마태의 순교>에서 그림 속의 카라바조


자객의 오른쪽 어깨 뒤편으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이고,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카라바조이다. 그림 속의 카라바조는 다른 등장인물들처럼 사건의 배경인 약 1600년 전 에티오피아인의 복장을 하고 있지 않고 카라바조가 살아가던 당대 로마인의 복장을 하고 있다.


이 남자의 얼굴이 카라바조의 초상화와 정확히 닮아있고, 그림의 가장 뒤편에 있는 그에게까지 조명이 비추고 있기에 카라바조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이라면 어렵지 않게 그를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카라바조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카라바조가 지금 응시하고 있는 것이 자객의 등인지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성 마태인지 분명치 않다. 그것은 자객의 등이 성 마태가 순교하는 장면으로부터 카라바조의 시선을 완전히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속의 카라바조는 분명 성 마태가 순교하는 현장에 있긴 하지만 성 마태가 순교하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지는 못하고 있다.


이를 통해 카라바조는 성 마태의 순교와 자신의 관계를 밝히고자 한 것 같다. 그는 분명 성 마태의 순교 현장에 있긴 하지만, 그 사건의 직접적인 참여자는 아닌 것이다. 또한 그는 성 마태의 순교를 그린 화가이긴 하지만 1600여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사건에 대해 전해 들은 것을 토대로 한 것이다.


비록 카라바조가 성 마태가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진 못했지만 성 마태의 순교에 대한 그의 생각과 반응을 그림 안의 카라바조를 통해 추측해볼 수 있다. 성 마태의 죽음을 자객의 등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그의 착잡하면서도 미묘한 표정이 성인의 암살이라는 사건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화가가 자신의 자화상을 자신의 작품 속에 그려 넣는 것이 일반적인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상하게 여길만한 일도 아니다. 화가에 따라서는 이것이 자신이 그 그림을 그렸다는 일종의 서명 행위이거나 자의식을 표출한 것이기도 하다.


카라바조가 자신의 그림 속에 자기 자신을 그려 넣은 것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해도 좋을 것 같다. 카라바조는 그림 속에 그려 넣은 자신의 자화상을 통해 자신이 그 사건의 목격자라는 참여의식과 그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간접적이지만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림 속의 카라바조는 ‘성 마태의 순교하게 될 것’ 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크게 놀라거나 당황하는 표정을 짓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등장인물들처럼 방관자나 구경꾼처럼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카라바조와 에티오피아에서 발생한 성 마태의 순교 사이에는 1600여 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존재한다.


카라바조의 그림이 마치 어제 로마의 어딘가에서 발생한 사건을 그린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이 크고도 넓은 시간의 틈을 극복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림 속의 카라바조는, 비록 순교가 성스러운 영광된 것이긴 하지만 세속을 살아가는 이의 입장에서 죽음이란,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안타까운 것이라는 듯, 오히려 무관심하게 보일 수 있을 만큼 측은한 표정을 지으며 조금 떨어진 뒤편에서 사건을 목격하고 있다.


by Dr. Franz KO(고일석), Professor, Dongguk University(former)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 카라바조의 <성 마태의 순교>에서 빛과 방관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