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카라바조의 <성 마태의 순교>에서 빛을 따라가 보자. 보는 이를 기준으로 그림의 왼쪽에서 들어온 빛은 손에 칼을 들고 성 마태를 죽이려 하고 있는 자객과, 자객의 칼을 맞아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성 마태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그림에서 빛은 등장인물들을 비추기 위한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어둠과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사건의 내용을 부각하고 이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사건 속으로 빠져들도록 하기 위한 서술의 도구로서 사용된 것이다. 그래서 카라바조를 빛과 어둠의 화가라고 부르는 것이다.
카라바조의 <성 마태의 순교>에서 빛은 관객의 시선이 먼저 이야기의 주인공인 성 마태와 자객에게 향하도록 하고 있고, 뒤이어서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와 성 마태에게 종려나무 가지를 전달해주고 있는 천사와,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건에 놀라서 달아나려 하고 있는 소년에게, 그다음으로는 그림 속에 등장하고 있는 다른 주변 인물들과 촛대와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제대 같은 사건이 발생한 실내를 장식하고 있는 배경을 향하도록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그림의 가장 뒤편에 작게 그려져 있는 카라바조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림 속에서는 여러 명의 주변 인물들이 성 마태의 순교를 목격하고 있지만 그들은 단지 방관자일 뿐이다. 어떤 이는 사건을 등진 채 고개를 돌려 힐끗 쳐다보고 있고, 어떤 이는 구경거리가 난 듯 턱을 손에 올리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마치 여느 선술집에서 발생한 소란스러운 구경거리를 바라보고 있는 듯 자객이 성 마태를 살해하는 장면을 가까이에서 둘러싸서 지켜보고 있다.
그림을 감상하는 관객의 시선으로 이들을 살펴보자. 이들은 관객에게 등을 보이고 있거나 비스듬한 측면만을 보일 뿐이다. 그들을 비추는 빛은 어딘가에서 반사된 간접적인 조명에 의한 것인 듯 부수적으로 느껴지고 있다. 이로서 이들 등장인물들과 사건의 현장은 비록 물리적으로는 가까이에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무한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태의 순교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표정과 몸짓이 세속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직간접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사건의 발생한 장소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해도 이 사건을 전해 듣거나 그림을 통해 알게 된다면, 어떤 이는 그게 뭐 대수냐는 듯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고, 어떤 이는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차가운 냉소를 보낼 것이고, 어떤 이는 그저 단순한 구경거리를 알게 된 듯 흥미로운 표정을 지을 것이고, 어떤 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경악할 것이며, 어떤 이는 연민의 표정으로 안타까워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사건이 발생했던 에티오피아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다면, 성 마태가 살해를 목격했던 사람들의 반응은 이와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성인이 살해를 당하고 있고, 더욱이 그 장소가 십자가와 제대가 있는 예배당의 내부라면, 초기 기독교의 신앙적인 뜨거움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카라바조의 그림에 나타난 주변인들의 반응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왜 카라바조는 그림 속 인물들을 이렇게 그린 것일까.
카라바조가 그의 작품 <성 마태에 순교>에 그려 넣은 이러한 무관심과 부정적인 반응은 단지 성인의 순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가톨릭 교회에 대한 일반 대중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사건에 연루되며 살아가던 카라바조는 일반 대중의 이러한 교회에 대한 반응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카라바조가 그림을 완성한 16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르네상스 시기에 피어난 인간 중심의 사고와 문화는 사회 전반에서 큰 변화를 일으켰고, 이후 전성기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성숙되어 카라바조가 살아가던 시기에 이르러서는 더욱 진보된 새로운 형태의 사조로 발전하였다. 교회가 신을 앞세워 인간의 삶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지상의 모든 것을 통제하던 중세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이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사회와 인간은 인간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화하였지만 교회와 교회의 관계자들은 그 변화를 인정하려 하지 않거나, 인지조차 하지 않으려 하였기에 교회와 신을 향한 사람들의 가슴은 차갑게 식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세속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교회는 멀어지게 된 것이다. 비록 세속에 찌들어 살아가던 카라바조였지만, 그는 이러한 현상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카라바조의 트라우마와 그 배경, 그의 성향과 작품세계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라면, 그가 <성 마태의 순교>를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거울을 보십시오. 지금 당신의 표정은 그들이 짓고 있는 표정 중에 어느 것과 닮아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