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타렐리 추기경이 남긴 지침처럼 성 마태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온 천사가 종려나무 가지를 마태의 손에 전해주고 있다. 가톨릭의 세계관에서 종료 나무는 순교를 상징한다. 성 마태는 죽기 직전에 천사로부터 종려나무 가지를 받게 된다. 이를 통해 성 마태의 죽음은 왕의 사주를 받은 자객에 의해 저질러진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하느님과 교회가 공인하는 성스러운 순교가 되는 것이다. 이제 그림을 감상하는 관객은 성 마태의 죽음에 한 아름다운 공주와 그녀에게 눈이 먼 한 어리석은 왕의 그릇된 판단이 얽혀있다는 것을 잊게 된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아름답고 성스러워야 할 성인 마태의 순교를 카라바조는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카라바조의 붓질로 표현된 성 마태의 마지막 모습에서는, ‘성인’과 ‘순교’라는 수식어를 느끼기에 어딘가 부족한 것 같이 느껴진다.
손을 허공을 향해 휘젓는 듯한 마태의 동작에서 죽음의 공포가 느껴지는 듯하다. 그것은 죽음이란, 그것이 비록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성스러운 순교라고 할지라도, 그저 담대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공포의 대상이라는 것을 카라바조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카라바조는 그의 작품 <성 마태의 순교>에서 로마의 거리에 늘려져 있던 세속적인 죽음의 모습을 성 마태의 죽음에 대입함으로써, 너무 성스러워서 자칫 이질적으로 느껴지게 되는 순교를 친숙하면서도 극적인 행위로 표현하고자 한 것 같다.
성 마태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두 팔을 벌린 것과 두 발을 겹친 모습이 왠지 낯이 익다. 앞에서 얘기한 것과 같이 성 마태의 이러한 자세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이로써 성 마태의 죽음에서는 로마의 거리 어디에서나 늘려있을 것 같은 음습한 죽음의 악취가 아니라, 성스러운 순교의 아름다운 향기가 피어오른다.
이런 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지롤라모 무지아노의 <성 마태의 순교>와 카라바조의 <성 마태의 순교>는 내용면에서 만이 아니라 구도면에서도 유사점이 있긴 하지만 표현과 기법이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카라바조는 무지아노가 그린 <성 마태의 순교>를, 그의 <성 마태의 순교>를 완성하기 전까지 보지 못했을 것이라 여겨도 좋을 것 같다.
카라바조는 밝음과 어둠의 극적으로 대비를 이용하여 성 마태의 순교의 순간을 그림 안에 박재시켜 놓았다. 그의 <성 마태의 순교>에서는 자객의 칼을 맞고 쓰러진 마태의 아픔이 그림을 감상하는 이에게까지 전달되는 듯하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사진 예술의 어떠한 기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생생하다. 그래서 그가 그린 그림에서는 가슴을 저리게 할 만큼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어둠과 밝음이라는 조명의 대비 효과를 이용한 카라바조만의 테레브리즘은 그가 살아가던 시대뿐만이 아니라 그다음 시대의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그만의 마법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by Dr. Franz KO(고일석, Professor, Dongguk University(for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