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의 작품 <성 마태의 순교>에서는 실제 사건이 일어난 에티오피아라는 나라를 떠올릴 수 있는 어떠한 것도 찾아볼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그림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 모두가 카라바조가 살고 있던 시대의 로마인들이라는 것이다. 성 마태가 자객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는 공간 또한 당시에 흔했을 법한 성당의 제대 같아 보인다.
성당의 내부를 살펴보면 일반 서민들이 대상인 듯 수수하다 못해 허름하기까지 하다. 자객의 머리 위 뒤편에 그려져 있는 촛대와 천사의 구름에 반쯤 가려져 있는 십자가 문양이 아니라면, 그림의 배경이 성당의 제대인지, 그냥 어두운 실내 공간일 뿐인지 인식하기 어려울 수 있다.
1) 그림 중앙의 자객
그림을 감상하는 관객은 그림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옷을 거의 벗고 있는 한 남자에게 먼저 눈이 가게 된다. 오른손에 칼을 힘껏 잡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그가 에디오피아의 왕인 힐타코의 명령으로 성 마태를 죽이러 온 자객임에 틀림없다.
하얀 옷에 검은 상의를 걸친 나이 든 한 남자가 자객의 왼쪽 바닥에 쓰러진 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를 응시하고 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 남자는 누가 보아도 성 마태이다.
자객은 그의 왼손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성 마태의 오른손을 강하게 잡고 있다. 성 마태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아차린 듯 칼을 다시 휘두르려고 하는 듯하다.
<성 마태의 순교>에서 자객
조명은 사건의 중심인 자객과 성 마태에게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기게 된다. ‘왜 조명이 자객을 밝히고 있는지’와 ‘어째서 자객을 그림 중앙에 배치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행을 따라가다 보면 자객은 단순한 자객의 역할을 넘어 <성 마태의 순교>가 있게 한 도구이자, 이야기의 서술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행위자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고 내용에 집중하게 만드는 카라바조만의 절묘한 서술 기법이다.
성스러워야 할 성 마태의 죽음이 한 여인을 향한 충동적인 욕정에 사로잡힌 갓 왕위에 오른 혈기왕성한 왕의 그릇된 질투 내지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게 된다면, 성 마태가 죽음은 성인으로서의 성스러운 죽음이 아니라 한낱 막장 드라마의 결말과도 같아 보일 수도 있게 된다. 카라바조는 이러한 점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였음이 분명하다.
누구보다 강한 육체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 그림 속의 자객에게 다시 눈을 돌려 보자.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살인이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는 듯 확신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그는 악마이자, 쉽게 유혹에 빠지는 일반 대중일 수 있다. 그에게서 죽임을 당하고 있는 성 마태의 모습에서 유대인들의 핍박과 로마 병사들의 조롱 속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고 있는 예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결국 그림에서 자객은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서술자이자,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성 마태의 죽음을 성인으로서의 거룩한 죽음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도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성 마태에게 쏟아지고 있는 빛과 자객을 밝히고 있는 빛은, 같은 빛이라 해도 단지 동음 이어(同音異語) 같은 관계일 뿐 전혀 다른 빛이다. 자객에게는 사건의 행위자이자 서술자로서 시각적인 밝음만이 주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by Dr. Franz KO(고일석, Professor, Dongguk University(for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