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면에 대한 새벽 단상
살아남은자의 운명, 사색으로의 초대
심면에 대한 새벽 단상
1.
다시 첫 시간이다. ‘처음’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들은 늘 새롭고 어색한 것들이다. 겨우 떨어진 눈꺼풀을 껌뻑이며 몸을 뒤척인다. 검은 어둠 저 너머에서 기억의 파편 몇 점이 희미한 불빛을 깜빡이고 있다. 추억이 되지 못한 것들은 반딧불이처럼 그냥 떠돌아다닐 뿐이다. 새벽마다 깨어나는 이 게으른 환영은 대체 내 안 어디에서 지내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지난 것들을 뒤적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야 할 길은 더 아득해지는 것 같다. 시간을 흘려보내면 괜찮아질 거라 여겼었건만, 분명 그럴 거라 생각했었지만, 여태껏 그 자리를 맴돌았을 뿐이니, 삶이란 참,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인가 보다. 두 손을 모으고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대상 없는 새벽의 기도는 기약 없는 기다림처럼 막연하기만 하다.
삼십대로 들어서든 그 해, 공부라는 것을 핑계 삼아 태평양을 낀 미국 남쪽의 한 도시에 머문 적이 있다.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크게 기억남을 것 없는 생활이 엊그제의 하루처럼 어제와 오늘에도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있었다. 반복되는 것들에겐 일상이란 꼬리표가 달리기 마련이고, 일상이란 건 무미하고 건조한 하루라는 시간이, 내일과 그다음의 내일에도 다름없이 이어지게 될 거라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예정이었으며, 그 예정은 어느 하루도 흐트러지지 않고 지켜지고 있었다. 바쁜 것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막상은 그렇지만도 않은 매일이, 그렇게 수이 오고 또 아무렇게나 지나갔다.
시간의 흐름이 어떠하든 그 생활 속에서도 몇몇은 기억에 남겨지기 마련이다. 그것 중에 하나에 대해, 다행히 기억의 벽면에 제대로 새겨진 그 하나에 대해, 얘길 해야겠다.
2.
뒷문이라고 해야 하나, 거실의 한쪽 벽면을 뚫고 박혀있는 문을 밀고 밖으로 나가면 잔풀이 드문드문 헝클어져 박혀있는 안뜰이 있었다. 기억을 조금 더 더듬어 보면 자라다만 것 같은 열매가 듬성듬성하게 매달려 있는 과일나무 몇 그루가 거기에 서있었고, 집의 경계를 따라 나무 판을 이어 세운 키 높은 담장은 마치 성채를 지키는 근위병 인양 느껴져서, 그럴싸하다기보다는 제법 근사해 보이기까지 했던 것 같다. 그곳은, 커피를 마시며 몇 가지 잡다한 얘기를 나누던 어느 날, 갑작스레 초대란 것을 받게 되어 들러야만 했던, 행정상으로는 미혼으로 살아가고 있던 피부 하얀 한 지인의 집 뒤뜰이었다.
그곳의 기억이 머리와 가슴속을 떠나지 않은 것은 그곳에 있었던 과일나무며 나무 담장 때문만은 아니다. 가운데라고 하기에는 중앙에서 살짝 벗어나 있긴 하였지만, 과하지는 않지만 마당의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던 작지만 선명한 한 공간의 존재가, 그 정원의 나무며 담장을 꼭 그곳에 있어야만 했던 것으로 기억에 남기게 만든 것이다.
나무를 엇물려가며 각뿔의 형태로 뾰족하게 세워 올린 그 신비스러운 공간은 마치 오래전, 들판과 숲 속을 누비며 살아가던 아메리카 인디언의 거처를 닮은 듯했고 내부로 들어서면 제단처럼 쌓여있는 낮은 선반 위에 어떤 종교적 의미를 담은 것 같은 소품들이 마음 거슬리지 않을 만큼 얹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혹여 버펄로 가죽을 몸에 두르고 웅크려 앉는다면 인디언 주술사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무엇을 하는 공간이며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왜 만든 것인지, 날이 갈수록 그것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커져 갔지만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비행기에 오르던 날까지도 물어보질 않았다. 아니 물어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입 밖으로 그곳에 대한 얘기를 뱉어내는 순간, 비밀스러운 마음의 두근거림이 행여 빠져나가버리게 될까 봐 차마 물어보지 못한 것이다.
“그날, 그 자리에서는 왜 아무것도 물어보질 않았을까.”
어쩌면 그때는 그것에 대해 알 것 같았거나, 알았을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을 무어라고 불러야 할까. 비밀의 정원이나 은밀한 사원이라고 기억에 덧붙여 남겨두어야 할까.”
살아보면 알게 된다. 지나온 무수한 것들 중에 몇몇의 것들은 아무런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는 것을. 그것이 오히려 더 괜찮은 일이란 것을.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이름으로, 어떤 느낌으로 기억에 남겨지느냐 하는 것은 오직 그것을 기억하는 자에게 던져진 후일의 몫일 뿐이라는 것을.
어떤 궁금증의 답은, 그것을 알아내는 것만이 장한 일은 아닐 수 있다. 비바람이 거칠게 부는 모진 날들을 견디며 자라난 광야의 키 낮은 나무가 곱게 자란 키 큰 나무보다 더 향기로운 꽃을 오랫동안 맺게 되는 법이다.
그 공간에도 퇴색과 채색이라는 시간의 작용이 시곗바늘의 깜빡임처럼 거쳐 갔다. 안타까우면서도 다행인 것은, 그때에 알 수 없었던 것은 지금도 여전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성하게 엉켜 자라난 궁금증의 가지는 막연함과 아련함이란 잎사귀를 덧쌓아 피어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다. 그 공간은 자기만의 삶의 해석 안에서, 자기만의 신성을 섬기는 밀폐의 성소라는 것을. 그가 어떤 신성을 믿었던 것인지, 무엇을 기도하였는지 물어보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왜 아직도 그 안뜰을 서성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답 없는 궁금증으로 남겨둔다.
추억, 안뜰 성소
그 성소에는
지금도
이른 잠 깬 새벽이
산속 옹달샘으로 고여 든 이슬처럼
물살 없이 머물고 있겠지
길게 드리운 키 큰 나무 담장은
지금도
정원에 내린 새벽안개에
투명하게 젖어 있겠지
그 정원의 과일나무들은
지금도
졸졸 흐르는 개울물 같은
새벽의 첫 기도에
열매를 익히고 있겠지
어둠이 걷히기 전에 한 번쯤은, 새벽의 첫 기도를 그곳에서 드리길 원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여 한번 만이라도 잿빛 안개에 갇힌 새벽의 그곳에서, 마음의 창을 걷어 올린 첫 기도를 웅크리고 드릴 수 있었다면 어땠을지, 몹시 궁금하다.
그곳을 얼쩡거리던 기도의 단상이 멀리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여명 덩이에 머문다.
“눈 뜨는 새벽과 눈 감는 밤의 감상은 삶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때를 기다리고 있는 같지만 다른 두 개의 얼굴인가 보다.”
3.
허공과 접한 물의 표면을 수면水面이라고 하니 가슴과 접한 마음의 표면을 ‘심면心面’이라 하는 것이 좋겠다. 심면의 결을 따라 떠다니는 것과 그 아래에 가라앉은 채 아무런 미동이 없는 것들이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재료이고, 가슴의 바다를 불어 가고 불어오는 바람이 심면의 파고를 일으키는 변덕의 원인인 것 같다.
그 심면의 결이 유난히 잠잠한 시간이, 아직 어둠이 먹물처럼 검게 채우고 있는 새벽이다.
새벽 첫 그림
안개 자욱하게 낀 새벽
파스텔 빛깔 물감을 꾸려
바람 부는 들판으로 나간다
아직 채 경계를 갖추지 못한 첫 빛과
먼 산등선을 기어이 오르는 여명을
어색하지 않을 만큼만
캔버스에 담아 넣는다
붓질에 뭉개어진 새벽의 윤곽 뒤에
나의 실루엣이 서있다
첫 햇살의 반짝임에
밤새 잿빛으로 그을린 추억이
먹물처럼 번져 든다
기억의 채색은 왜곡된 환상을 기억이라고 믿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덧칠해진 표면을 진실의 살갗이라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기도 하다. 때로는 진실이라 믿는 것조차 집착이 만들어낸 위안의 또 다른 형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바람이 바람을 몰아가는 바람 많은 날엔 낮게 뜬 새벽의 구름이, 인간의 세상 가까이에서 오렌지 빛 자유 유영에 빠진다. 비록 빛의 흔적이 더듬어지긴 있지만, 빛의 온기보다는 바람의 쌀쌀함이 앞장서서 걷고 있는 날에는 왜소해진 사람의 군상이 외로움인지 모를 고독에 떨게 된다.
그 심면에 그려진 자신의 모습은 먼 산자락을 바라보며 밤새 닫지 않은 낡은 창에 맺힌 불빛처럼 더욱 외롭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해가 오르는 궤적을 따라 눈길이 쫓는다. 더 이상 검지만은 않은 하늘은 지금이 밤의 끝자락인지 새벽의 첫 자락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자세히 보면 물감을 쏟아부은 듯 검은 기운이 여기저기에 뭉글하게 엉켜 붙어있지만 군데군데 박혀있는 붉은 기운이 여명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때를 기다려 신발 속으로 발을 끼운다. 첫 빛을 따라나선 산책길의 걸음은 심면의 결에 바람의 무늬를 불어넣는 자잘한 장난질 같다.
눈 비비며 나선 안개 낀 잿빛 새벽의 산책길, 밤새 하얗게 비워낸 마음의 면 저 편에서 그리고, 하늘과 땅이 구불하게 엉켜 맞닿은 세상의 모서리에서, 붉은 여명이 슬며시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안갯속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하늘이
뿌연 물방울에 갇히고
안갯속에서 무거워진 걸음은
가야 할 길을 잃는다
이른 아침의 산책길을 걷다 보면
인생이란 게,
짙은 안갯속에서의 길 찾기 같이
막연하기만 한 것이란 것을
슬며시 알아차리게 된다
어쩔 수 없다
걷다가 멈추는 그곳에서
모든 길은 닫힐 것이기에
안개의 구속에 안겨서라도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