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침, 커피를 마시며

가을 아침, 커피를 마시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몇 걸음 떨어진 저기쯤에서 서성이는 것 같더니, 오늘 아침에는 거리낌 하나 없는 듯 서재의 창틀을 넘는다. 처음 열린 창문을 넘어선 가을의 아침은 아직 떨쳐내지 못한 밤의 찌꺼기를 투명한 물기 저편으로 밀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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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확인한다. 모닝커피가 고플 시간이다. 커피 머신의 버튼을 눌러 크레마를 채운 에스프레소 한 잔을 내린다. 조륵 조르륵, 산속 옹달샘에 물이 차오르듯 갈색의 커피가 잔을 채운다.

서재의 창 앞으로 돌아온다. 네모난 공간 가득 신선한 커피 향이 차오른다. 가슴이 벅차다. 가을날의 첫 모닝커피는 투명한 에스프레소 잔에 조금만 담아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입술을 살짝 가져다 대어 홀짝거리다가 사라져 가는 크레마가 아쉬워 핸드폰에 담는다.


지난번 베네치아에서 아침이면 들르곤 했던 카페 플로리안의 커피를 생각한다. 이 자그마한 잔에 카페 플로리안의 마법을 녹여 토핑 할 수 있다면, 세상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행복한 모닝 에스프레소가 될 것이다.

“아 그때도 마침 가을이었구나.”

“아드리아 바다의 가을 햇살을 찾아 나섰던 그 베네치아에서 카페 플로리안의 모닝커피에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산마르코 광장 지척에 잡았던 숙소 덕이었을 거야.”

지난 추억을 떠올린 눈이며 입술 가에 잔주름이 새겨진다.


돌이켜 보니 눈과 코와, 입 안의 모든 돌기가 희롱당하는 곳이 카페 플로리안이다. 가을날의 오늘 아침, 당장이라도 카페 플로리안의 문 안으로 들어서고 싶다. 화려함에 가려졌지만 연륜만큼이나 낡아 보이기도 했던 카페 플로리안이 말간 햇살에 말라가는 가을날의 나뭇잎 같기도 한 누군가의 삶과 닮은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괜한 억측인 걸까.

프랑스 작가 샤를르 모리스 탈레랑이 남겼다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커피의 참맛을 가을 아침의 이 첫 커피가 알게 해 준다. 아침 공기의 쌀쌀한 촉촉함과 가을빛의 투명함은 에스프레소의 쓴맛과 신맛, 떫은맛과 구수한 맛을 지난 어느 날의 사랑처럼 달콤하고 향긋하게 만들어 버리는 신기한 재주를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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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고일석(Dr. Franz Ko, NY)

Professor, Dept. of Multimedia, Dongguk University(for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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