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서북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워싱턴주(Washington State)의 주도인 시애틀(Seattle)은, 태평양을 끼고 있는 다른 서부지역의 도시들이 그렇듯이 같은 위도 선상에 있는 동부지역의 도시들과 비교하면, 큰 더위가 없는 여름 날씨와 큰 추위가 없는 겨울 날씨 덕에 미국 내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에 한 곳으로 꼽히고 있다. 실제 그 인근 지역에서 며칠을 지내다 보면 “여기에서 살아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근래에 들면서 이러한 현상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미국 국립기상청(NWS: National Weather Service)과 방재당국에 따르면 시애틀에도 기상관측 사상 유래 없는 큰 비나 큰 눈 같은 이상 기상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각종 월드뉴스를 보면 근래에 들면서 미국뿐만이 아니라 유럽과 세계의 여러 도시들 또한 변덕스러운 날씨와 폭설 폭우 등으로 몸살을 겪고 있다. 각종 언론과 전문가들의 분석을 참고하자면 이러한 현상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류가 지구온난화의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면 이러한 기상이변은 앞으로 더 빈번해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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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다 보면, 백인 중산층 주택의 앞마당이나 현관 앞에 걸어놓은 인상 깊은 문구를 만날 때가 있다. ‘Freedom is not Free’가 그것이다. 단지 문구로만이 아니라 삶을 살아 보니 직접 알게 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을. 자유가 공짜가 아니듯,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생활환경 또한 공짜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나 또한 그렇지만, 누구나 지금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것은 말이나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법이다. 더 많은 것을 움켜잡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일 수 있다.
물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자연재해가 단지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와 같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종 이상현상에 대해서 그것을 전혀 인간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하기에도 논리적인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인간은 항상 불확실함에 따른 리스크를 안은 채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다. 정치와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리스크 이외에도 앞으로는 불확실한 기상이변으로 인한 리스크가 인간의 삶에 더욱 크게 영향을 미칠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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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여러 국제학술단체의 일을 맡아 각종 국제행사들을 주관하며 지내다가 보니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교류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불확실성에 대해 얘길 하다가 보니 한 분, 미국의 듀크대학(Duke University)에 재직하신 노교수님이 떠오른다.
여러 해 전,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새로운 학술저널을 발간하기 시작하셨다고 연락을 해오신 적이 있다. 그보다 더 오래전, 이미 몇 개의 국제 학술저널을 성공적으로 발간하신 경험이 있으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젠 거의 은퇴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조금은 의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어쨌건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근황이랑 안부를 주고받은 후에 몇 주가 지나자 본인의 친필 사인이 든 사진과 함께 창간호를 나의 연구실로 보내주셨다. 그 저널의 이름은 <Journal of Uncertainty>, 한국말로 하자면 <불확실성 저널>이다.
그제 서야, 몇 해 전에 열렸던 3일간의 국제학술행사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어울렸던 티타임의 자리와 산책길에서, 만찬장의 옆자리 앉으셔서도 그분은 불확실성과 그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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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이 불확실성은 이제 우리의 삶에 있어 회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형상이다.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기후에서도 삶에서도 불확실성은 결코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불확실성을 기반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게 될 리스크의 관리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과거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인간과 신, 우주와 만물에 대해 고민한 것이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불확실성의 리스크에 대한 고민은, 흐르는 방향은 다르지만 결국 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물살처럼 그리 다른 문제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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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천형은 ‘현명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을 고민이라 말하든 지혜를 통한 사색이라 말하든, 비록 그 고민이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하더라도, 인간의 고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계속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조금만 깊이 있게 살펴보게 되면 인간의 진화는 지구 상에 존재하고 있는 다른 동식물의 진화와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의 진화는 육체의 진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진화에도 있다. 어쩌면 인간이 인간다워진 것은 정신의 진화가 언제나 육체의 진화를 앞서 왔기 때문일 수 있다. 인간은 사색을 통해 스스로 진화의 여정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색하는 인간은 진화하는 인간이고 인간은 사색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사색을 통해 정신적으로 진화하는 것이야말로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가장 인간다운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