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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기생하기, 삶 기생하기 #3

바람에 기생하기, 삶 기생하기 #3


바람이 분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살펴본다 해도 바람이 부는 것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란 걸 찾아볼 수 없다. 바람은 머리 위에서도 발밑에서도, 바닷가 절벽 끝에서도 메마른 사막 한복판에서도, 세상 어느 곳에서나 불어오고 불어 가는, 언뜻 보면 실체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막상은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물리적이면서도 감성적이기도 한 특이한 현상의 발현이다.

바람을 말함에 있어 더욱 특이하다 할 수 있는 것은 “바람이 분다”라는 것에서는 ‘분다’라는 행위와 ‘바람’이라는 주된 개체만이 보일 뿐이고 바람이 불게 되는 이유와 방향, 세기와 범위 같은 [바람의 속성]은 가늠할 수 있는 단서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람은, 대개의 경우 사람에게, 감상적 작용을 일으키는 하나의 현상이어서 바람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행위 자체이기 때문이다.


“바람은, 불어오는 것이나 불어 가는 행위를 멈추는 날, 바람으로서의 삶을 멈추게 될 것이다.”


바람이 불 때를 쫓아 돛을 올린 배는 바다를 항해할 수 있게 되지만, 그때에도 돛을 내리고 있는 배는, 의도에 의한 것이건 그렇지 않은 것이건, 출렁이는 물살에 자신을 맡긴 채 그냥 휩쓸려 가게 될 뿐이다.

*** ***


바다의 수면을 스치는 바람은 항해자에게 던져진 운명이다. 운명이란 걸 느낄 수 있고 그것을 따르려는 사람라면, 그렇기에, 바람이 부는 날을 쫓아 돛을 올려야만 한다. 이때 돛을 어느 방향으로 향하게 해야 할지, 얼마만큼이나 펼쳐야 할지에 대해서는 오직 자신이 쌓아온 지혜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이에게 있어 지혜란 자기 스스로가 지어진 [후천적 본능]이라고 할 수 있게 된다.


그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가끔은, 내가 지금 바람에 기생하고 있는 것인지, 바람이 나에게 기생하려는 것인지, 혼동이 되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런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는, 이 혼동이 나의 잘못으로 인한 혼돈 때문인 것인지 바람의 잘못으로 인한 혼돈 때문인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손쉬운 핑계는 ‘그것은 운명 때문이라고, 운명이 그렇게 한 것이라고’, 운명에게 그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일단 입 밖으로 운명이란 단어를 내뱉은 인간은, 운명을 숙주 삼아 운명에 붙어 살아가는 기생인이 되어 버린다.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주어진 운명’이란 실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들리는 얘기로는 누군가 운명의 파도를 헤쳐 나가기 위해 돛을 펴고 항해에 나섰다고 한다. 이제 바람은 그의 숙주가 되었지만, 그는 지금도 운명을 입으로 되뇌고 있을 것이다.


by Dr. Franz KO(고일석, Professor, Dongguk Univeristy(for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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