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바이러스는 욕심이 아주 많은 대식가이다. 나라는 몸뚱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또 다른 영양 덩어리를 요구한다. 결국 내가 추가로 제공한 것은, 사실 그것밖에 없기에, 내 속에 기숙 중인 검은 글줄과 누런 책 몇 권이다.
책에 기생하며 양분을 취하고, 글줄을 찾아 몸집을 키워갔으니 결국 나는 책과 글을 감염시킨 채 분열 중인 바이러스이다. 숙주가 된 글과 책의 강한 내성은 나라는 바이러스의 존재 따위는 안중에도 없거나 설사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잊어버린 것 같다.
책과 글이라는 숙주에게 붙어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그 숙주들에겐 아무런 증세를 나타내지 못하는 나라는 바이러스는, 그 숙주가 더 이상의 분열을 허락하지 않을 때, 그래서 성장을 멈추어야 할 때, 또 다른 숙주를 찾아 길을 나서야만 한다.
꿈에서 만난 나는 내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나보다 더 큰 바이러스이다. 나는 나의 숙주이면서 또한 바이러스이기도 하니, 나라는 바이러스는 재귀적 호출이 생성한 형이상학의 무한공간을 떠도는 허영의 포자인 것이다.
또한 그 꿈속의 내가 현실의 나를 대신하고 있으니 꿈속의 나는 분명 나이기는 하지만 또한 내가 아닐 수도 있어, 밤 새 뒤척거리게 만든 꿈의 잔상은 숙취에 깨어난 새벽처럼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든다.
어느 날 희미하게 뜨진 눈의 망막에 맺혀있는 너무 선명한 꿈의 잔상이, 피안과 차안의 경계에 갇힌 나라는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연약한 나를 숙주 삼은 내가 나타내는 증세란 게 고작 꿈일 뿐이라니, 내 속에서조차 나의 존재는 허술하기만 할 따름인 것 같다.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문득 스쳐 지나간 한 때, 기억조차 희미한 그곳에서, 시간과 공간이 뒤죽박죽 섞여버린 어느 날부터, 알 수 없고 치료조차 할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몸뚱이를 끌어안고, 가늠할 수 없는 길을 어떻게든 헤쳐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때와 곳을 꼭 끼워 맞춘 섬세한 정신의 유희 속에서 스스로가 스스로의 숙주가 되어 나 자신이라는 바이러스를 키워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스스로의 자각만으로는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동음 이어 같은 무수한 말들이 난무하는 혼동의 날들 속에서 알게 되었다.
"그래 나의 바이러스는 바로 나 자신이었어."
나에게 감염된 나는, 그 바이러스의 지배를 받아들인 또 다른 존재가 되니 나는 나의 포식자이자 먹잇감이었던 것이다.
by 고일석 (Dr. Franz KO, Professor, Dongguk University(for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