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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낭만의 곤돌라

베네치아에서는 수로와 곤돌라, 햇살과 바람, 물과 하늘, 가면과 유리, 골목길과 광장 그리고 성전과 다리, 눈길 닿고 마음 가는 것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라곤 찾기 힘들다.

그중에서도 검은 곤돌라가 좁은 물길을 바쁠 것 없이 뉘엿뉘엿 지나가는 모습은 결코 지워낼 수 없는 베네치아만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붉은 포도주 빛 벨벳 천을 곱게 깐 곤돌라에 앉아 자잘하게 출렁이는 물길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얼굴을 간질이는 바닷바람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딘가에서 촉촉한 코발트빛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 느낌이란 건 마치 바다요정의 목소리를 닮은 검은 악기의 마법에 빨려 들어간 듯해서 좀처럼 헤어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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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곤돌라


와인 빛 벨벳 가지런히 깐

베네치아의 곤돌라는

잘 익은 포도주를 품은 오크통에서

달콤하고 향기로운 노랫가락이

퉁 퉁 튕겨 나오듯

금세라도 행복한 음악소리를

코발트빛 일렁임에 뿜어낼 것만 같은

잘 빠진 검은 악기이다



괴테가 묘사한 베네치아의 곤돌라는 아름다우면서도 신비로워서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맑은 햇살에 반짝이는 코발트빛 물길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 것 같은 기분 좋은 환상에 빠져들게 된다.


“반짝이는 햇살을 받으며 연안의 호수 같은 바다를 통과해 가는 동안 화려하고 가볍게 팔랑거리는 멋진 옷을 입은 곤돌라 뱃사공이 뱃전에 서서 푸른 하늘 아래 연녹색 수면 위를 노를 젓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마치 어느 베네치아파 화가의 가장 최근 작품을 보는 것 같다.”


“햇빛은 베네치아만의 특유한 색을 화려하게 부각해 그늘진 부분에서조차 빛의 근원으로서 제구실을 할 정도로 아주 밝다. 옅은 푸른색 물 위에서 반사되는 빛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이 아주 밝은 배경 속에 그려져 있다.(괴테)”


곤돌라의 검은 반짝임에 몸을 맡긴 달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우며 달빛 찰랑이는 밤 물살에 오른 검은 곤돌라에서는 또 어떤 낭만이 배어날까. 어쩌면 팽팽하게 물오른 여행자의 낭만이 곤돌라가 흘러가는 수로 위로 떠다니다가 어느 순간 톡톡 터져서 뽀얀 밤안개로 슬며시 번져나지 않을까.


“베네치아 밤하늘의 달빛을 받으며 곤돌라에 오른다. 두 사람이 한 소절씩 번갈아가며 노래 부른다. 여기에서 먼저 한 소절을 부르면 저기에서는 그다음 소절로 화답한다. 그렇게 앞서 부른 사람이 다시 그 노래를 이어가며 두 사람의 노래는 계속된다. 잔잔한 수면 위로 퍼져가는 그들의 즐거운 노래놀이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더욱 매력적이 된다.(괴테)”


잠시 눈을 감으니 괴테가 듣던 그 밤의 노랫소리가 물길 저기에서 들려온다. 이미 살짝 벌어진 입술에 침을 축여가며 끼어들 순서를 기다린다. 이제 세 사람의 노랫소리가 한 소절씩 번갈아가며 달빛 일렁이는 베네치아의 수면 위에 음의 파고를 더한다. 잔물결의 신비한 출렁임이 기억 없는 엄마의 심장박동처럼 평온하기만 하다.

서재 책장의 중간 칸에 꽂아두었던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을 꺼내 뒤적이다가 걱정이 앞선다. 이미 괴테가 그려낸 베네치아에게 작게나마 내가 덧붙일 수 있는 글줄이란 게 남아있기나 한 것일까. 혹시 나의 덧칠이란 게 단지 이방 여행자의 허술한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면 나의 베네치아는 너무 남루해지지나 않을까.


어쩌지, 부끄러움에 뺨이 달아오르지만 그래도 검은 흘림은 멈추어지지 않으니, 이 흘림이 비록 허술한 글재주로 맨몸을 속속들이 드러내는 짓일 뿐이라 해도 지금은 멈추어지지 않는다. 미처 깨닫기도 전에 너무 멀리 와버린 이 상황도 어쩌면 베네치아가 부리는 마법이라 여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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