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로마의 뒷골목에서 만나는 카라바조

14. 로마의 뒷골목에서 만나는 카라바조



카라바조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로마에서 만이 아니라 이탈리아 전역에서 종교화의 거장으로 자자한 명성을 누렸지만, 뒷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말썽을 피우는 습성은 여전하였였다. 카라바조는 어둡고 침침한 1600년대 로마의 저잣거리에서 부유한 집안의 방탕한 자제에서부터 웃음을 파는 거리의 여자와, 막연하게 그를 추종하는 일자무식의 시정잡배와 같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길 좋아했다. 통제되지 않은 그의 문란한 행실은 종종 싸움질에 연루되곤 하였다.


중세 시대의 뒷골목이란 게 잡다한 소란과 싸움질이 마치 일상 인양 발생하는 거친 장소였을 거라는 점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곳에서조차 카라바조의 행실은 기행이라 할 만큼 이상하고 불량스럽기 짝이 없었다. 카라바조는 화가로서 명성이 높은 만큼 불량배로서 악명 또한 높았다. 결국 그가 연루되어 발생한 각종 불미스러운 사건들과 그에 따른 법정 기록들이 그의 삶의 페이지에 길게 채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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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의 카라바조는, 교회와 화단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부와 명예를 움켜쥔, 자타가 인정하는 당대 최고의 화가였지만, 세상의 눈높이로 바라본 카라바조는 행실만이 아니라 성격 또한 괴팍하고 충동적이어서, 어떤 짓을 저지르게 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사실 우리로서는 카라바조가 대체 왜 그렇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 길은 없다. 안타깝지만 그것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의 행적과 삶의 추적을 통한 추측뿐이다.

무언가를 추측하는 일에는 그것을 추적하는 이의 편향된 생각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따라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내려온 여러 기록과 이야기 속에 등장하고 있는 카라바조는, 그 다양한 버전만큼이나 다채로운 수십 또는 수백 명의 카라바조일 수 있고, 그들 모두가 카라바조였을 수도 있으며,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서는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카라바조가 아니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카라바조 같은 천재 예술가를 추적하는 일에 나선다는 것은, "천재는 세상의 모든 판단으로부터 배제되어야 한다."는 문장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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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저서 <<예술가들의 생애>>(Lives of the Artists 또는 The lives of the modern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 1672)에서 카라바조에 대한 기록을 남긴 [지오반니 벨로리](Giovanni Pietro Bellori, 1613 – 1696)에 의하면 카라바조는 당시 뒷골목의 패거리들 사이에서 떠들썩하게 알려져 있는 인물이었으며, 로마로 오기 전인 1590년에서 1592년(나이로는 열아홉에서 스물 하나) 사이에, 밀라노에서 '살인'과 같은 '심각하고 중대한 사건'을 저질렀을 거라고 보고 있다.


또한 [지오반니 벨로리]는 카라바조가 그 사건으로 인해 밀라노에서 급히 도망쳐 베네치아를 거쳐 로마로 온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결국 [지오반니 벨로리]의 견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카라바조가 로마에 온 것은, 로마가 당시 [영원한 로마]라고 불리는 세상의 중심이었기에 예술가로서 성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밀라노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한 형벌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던 셈이 된다.


하지만 [지오반니 벨로리]가 남긴 이 기록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허점을 찾아볼 수 있다. 만약 카라바조가 실제로 살인을 저질러 밀라노를 떠난 것이 분명하다면, 로마와 이탈리아 전역에 그의 이름이 알려진 후에도, 어째서 밀라노의 사법당국이나 피해자의 가족들이 살인범인 카라바조를 체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갖게 된다. 당시 밀라노가 가진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위상을 고려한다면, 카라바조가 이미 밀라노에서부터 살인을 저지른 흉악범이라는 [지오반니 벨로리]의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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