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에 대한 로마 경찰의 심문 기록과 법정 기록은, [콘타렐리 채플]에서 주문받은 <성 마태의 순교>와 <성 마태의 소명>을 완성한 해인 1600년 말경에서부터, [라누치오 토마소니]를 살해한 사건으로 인해 도피 생활을 시작했던 해인 1606년 까지, 약 6년이라는 기간에 집중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카라바조의 이름은 15번의 사건에 관련되어 심문 문서에 등장하고 있고, 그중에서 7 차례는 실제 감옥에 투옥되기까지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결국에는 그의 강력한 후원자들의 중재와 도움으로 풀려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로마에서의 카라바조의 행적을 공적으로 남아 있는 문서들을 바탕으로 살펴보고 있으면, 그를 호의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본 기록물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카라바조에 대한 기록은 주로 17세기에 쓰인 책들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책 4종은 다음과 같다.
- 1604년에 출판된 [카렐 만더](Karel van Mander, 1548 – 1606)의 <<화가들에 관한 책>>: 이 책은 17세기 네덜란드어로 출판하였는데 원 제목은 <<Het Schilder-Boeck>> 또는 <<Schilderboek>>이고 영문으로는 <<The Book of Painters>>, <<The Book of (or on) Painting>> 또는 <<The Book on Picturing>>으로 번역되었다.
- 1617년에서 1621년 사이에 쓰인 [줄리오 만치니](Giulio Mancini, 1559 – 1630)의 <<회화작품에 대한 고찰>>(Thoughts on Painting): 이탈리아어로는 <<Considerazioni sulla pittura>>인 이 책은 1617년에서 1621년 사이에 쓰였으나 당시에는 출판되지 않았다가 1956년에 와서 출판되었다.
- 1642년에 출판된 [지오반니 발리오네](Giovanni Baglione, 1566 – 1643)의 <<1572년부터 1642년까지 활동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 조각가의 생애>>(The Lives of Painters, Sculptors, Architects and Engravers, active from 1572–1642): 이탈리아어로는 <<Le Vite de' Pittori, scultori, architetti, ed Intagliatori dal Pontificato di Gregorio XII del 1572. fino a' tempi de Papa Urbano VIII. nel 1642>>이고 한국어로는 <<1572년 그레고리오 12세 때부터 1642년 교황 우르바노 8세 때까지 활동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 조각가의 생애>>로 번역할 수 있다.
- 1672년 출판된 [지오반니 벨로리](Giovanni Pietro Bellori, 1613 – 1696)의 <<예술가들의 생애>>(Lives of the Artists): 이탈리아어로는 <<Vite de' Pittori, Scultori et Architetti Moderni>> 이 책은 영문으로는 <<Lives of the Artists>> 또는 <<The lives of the modern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 한국어로는 <<예술가들의 생애>> 또는 <<화가들과 조각가들, 건축가들의 생애>>로 번역되고 있다.
이들 초기의 출판물들 대부분은 카라바조의 삶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출판물들의 기록은 '사실과 다르거나 모순되는' 부분들이 있어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이라고 볼 수만은 없지만 카라바조의 생애에 관해서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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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주의를 끄는 다른 한 가지는, 다른 예술가들의 행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카라바조만의 독특한 점을 이들 기록을 통해 더듬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카라바조가 경찰서와 감옥을 들락거린 1600년부터 1606년까지의 6년이라는 기간이 바로 카라바조의 전성기와 정확하게 겹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겐 6년이라는 시간이, 그냥 흘려보내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저 길지 않은 시간의 단위일 수도 있지만, 누구보다 짧기만 했던 카라바조의 일생을 생각해 보면, 전성기의 카라바조에게는 그 6년이 영원히 머물고 싶은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6년 간 무려 7 차례나 실형을 살았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불과 6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위대한 화가 카라바조]는 전과 7범의 범죄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1600년에서부터 1606년 까지 로마에서의 카라바조는, 작품의 의뢰가 끊이질 않는 전성기의 예술가였지만 크고 작은 범죄를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범죄자이기도 했던 셈이다. 그래서 범죄에 연루된 그의 기록만을 놓고 보면 카라바조는, 그저 하릴없이 뒷골목이나 배회하면서 괜한 말썽을 피우곤 하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불량배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카라바조의 행적을 쫓다가 보면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이해하기 힘들 만큼의 기행을 일삼은 카라바조를, 대체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걸까."
"아무리 그의 뛰어난 작품에 눈과 마음을 온통 빼앗겨 버렸다고 해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다치게 할 것만 같은 그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대관절 어떻게 더듬어야 한단 말인가."
어쩌면 그의 천재성은,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다른 방향으로 향하기를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직 자신의 야망만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게 만든 고대 마케도니아의 한 젊은 사내를 우리는, 오직 그가 이룩한 업적만을 양지에 잔뜩 늘어놓고서는, [위대한 대왕 알렉산드](Alexander the Great King, July 356 BC, Pella - June 323 BC, Babylon)라고 칭송하고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카라바조 또한 오직 그의 재능과 작품만으로 [위대한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 the Great Painter)로 평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위대함과 천재성은, 안타깝게도, 반듯함이라든가 완벽함과 같은 긍정적이고 따스함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광기나 허술함과 같은 부정적이면서도 차가운, 불가해한 현상을 발산하는 것은 아닐까.
카라바조가 예술가로서 전성기를 누리는 동안, 그이지만 또 다른 그일 것 같은 그가 저지른 크고 작은 일련의 부정적인 사건들에는, 탈색과 변형, 채색과 과장이라는 세인들의 손때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더해졌고, 거기에다가 옮겨 적은 이의 상상력이라는 양념이 가미되면서 [카라바조 = 희대의 악동]이라는 그럴듯하고 흥미로운 등식이 완성되었다. 아무튼 카라바조가 남긴 기이하고 괴팍한 행적은 그가 천재적인 대화가로써 이룩한 위대한 업적들조차 낮춰 보게 만드는 부정적인 도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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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가 연루된 사건에 대한 기록
그가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발생한 사건의 기록을 살펴보는 것은 아마도 카라바조의 로마에서의 행적과 삶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600년 11월 28일, 그의 후원자인 [델 몬테 추기경]과 살고 있던 [파라조 마다마](Palazzo Madama)에서, [델 몬테 추기경]의 손님으로 초대되었던 귀족 [지롤라모 스탬파 다 몬테풀치아노](Girolamo Stampa da Montepulciano)를 곤봉으로 두들겨 패서 고소를 당했고 이로 인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1601년 감옥에서 석방된 후 <그리스도의 체포>(The Taking of Christ, 133.5 cm × 169.5 cm, 1602, National Gallery of Ireland, Dublin, Ireland)와 <정복자 큐피드>(Amor Vincit Omnia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 156 cm × 113 cm, 1601-1602, Gemäldegalerie, Berlin, Germany)를 그렸다.
<그리스도의 체포>(The Taking of Christ), 133.5 cm × 169.5 cm1602, National Gallery of Ireland, Dublin, Ireland
<정복자 큐피드>(Amor Vincit Omnia), 156 cm × 113 cm, 1601-1602, Gemäldegalerie, Berlin, Germany
그가 남긴 작품들을 연대별로 따라가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시기의 카라바조는 화가로서 최고의 정점을 찍고 있었으며 그에 걸맞은 수준 높은 작품의 의뢰가 계속해서 들어왔다. 하지만 사생활에서는 폭력이 동반된 거친 다툼의 정도가 점점 심해져 가고 있었다. 카라바조가 저지른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적인 사건들로 인해 그는 경찰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는 일이 종종 벌어졌고, 사건에 따라서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 로마에서 가까운 지역인 토르디 노나(Tor di Nona)에 있는 감옥에 여러 차례 수감되기도 하였다.
1603년에는 또 다른 화가인 [조반니 바글리오네](Giovanni Baglione)가 카라바조와 그의 추종자인 [오라지오 젠틸레스치](Orazio Gentileschi)와 [오노리오 롱히](Onorio Longhi)를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는 불쾌한 시를 썼다는 이유로 고소하였고 이로 인해 카라바조는 또다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프랑스 대사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한 달 동안의 수감 생활 후에 가택연금 상태로 전환되면서 그의 작업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604년 5월과 10월 사이에는 불법 무기를 소지하고 거리를 돌아다닌 죄와 도시 경비원을 모욕한 죄로 여러 번 체포되었고, 선술집에서 웨이터의 얼굴에 아티초크(Artichoke) 접시를 던져서 고소당했다. 이 시기의 카라바조는 위협적일 만큼 큰 칼을 옆구리에 끼고 로마의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1605년에는 카라바조의 모델이자 연인이었던 [레나]와의 분쟁이 있었는데, 당시 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레나] 측의 공증인인 [마리아노 파스칼론 디 아큐몰리](Mariano Pasqualone di Accumoli)를 두들겨 패서 중상을 입히는 바람에 3주 동안 제노바로 피신했다. 이 사건 또한 카라바조가 저지른 다른 사건과 마찬가지로 카라바조의 강력한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 후 로마로 돌아와서는 집세를 내지 않아 건물주(Landlady)인 [프루덴치아 브루니](Prudenzia Bruni)에게 고소를 당하였는데 이에 대한 악감정으로 밤에 창문에 돌을 집어던져서 또 한차례 고소를 당했다. 그해 11월에는 자신이 소지하고 있던 칼 위에 넘어져서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카라바조가 저지른 이러한 사건들은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버린 1606년의 토마소니 살인사건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할 만큼 경미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