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카라바조의 1606년 살인사건에 대해

23. 카라바조의 1606년 살인사건에 대해


14세기에 시작된 흑사병의 위세가 많이 꺾였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유럽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죽음을 불러오고 있었고, 전염병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삶의 시간이 짧던 시대에 카라바조가 태어나서 자라고, 화가로 활동하다가 떠나갔다.

카라바조의 세상에는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죽음의 그림자가 늘려있었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다 보면 소중한 사람을 갑작스럽게 잃는 일 따위는 '누구나 겪게 되는 어쩔 수 없는 불행' 정도로 받아들여야 한다. 피할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불행은 카라바조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여동생과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연이은 죽음은 카라바조에게 '죽음과 이별'이라는 커다란 트라우마를 남겼다.


물론 그런 불행을 겪었다고 해서, 카라바조와 동시대에 살았던 누구나가 그와 같은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카라바조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는, 평생토록 그 트라우마의 시달림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의 트라우마를 입에 담을 때면, 듣는 이의 이해를 애써 구해야 할 필요는 없다.


"신이 내린 단 한 명의 천재 화가 카라바조를, 우리와 같은 일반인의 선상에 세우려는 시도는 무의미한 짓일 뿐이다."


아마도 카라바조는 그의 트라우마가 이끌어 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카라바조의 정서적 성장을 멈춰버렸기에, 비록 육체적으로는 성인이 되었지만, 그의 사회적 공감능력은 어린 시절에 멈추어 선 채, 심약하기 짝이 없는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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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서는 거장의 삶을 살았지만, 현실에서는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천박한 삶을 살아가던 카라바조를, 다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덩이로 밀어 넣은 사건이 발생한다. 1606년에 그의 손으로 저지른 [토마소니] 살인사건이 그것이다. [토마소니]라는 한 남자(갱스터(Gangster)라는 기록이 있다.)를 살해한 이 사건으로 인해 카라바조는, 그토록 사랑하던 로마에서의 삶을 그의 인생에서 밀어내어야만 했다. 이 사건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캄포 마르치오](Campo Marzio)의 부유한 가문 출신인 [토마소니 라누치오](Ranuccio Tommasoni)와 카라바조가 1606년 5월 29일에 결투를 벌렸는데 카라바조의 칼에 [토마소니]가 죽음을 당하였다."


이 살인사건을 두 남자 간의 ‘결투’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면, 게다가 [토마소니]가 평소에도 악평이 자자하던 시정잡배와도 같은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하게 되면, 이 날의 사건으로 인해 카라바조를 ‘살인’이라는 심각한 범죄 행위에 묶어 넣는 것에 대해 반론을 찾아볼 수 있게 된다.


물론 어떠한 경우라 해도 살인이라는 흉악한 범죄는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이지만, 이 살인사건이 카라바조와 [토마소니]라는 거친 사내 간의 결투로 인한 것이었다면, 만약 이날 카라바조가 [토마소니]에게 패했다면, 카라바조가 살해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사건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따라서 카라바조와 카라바조를 변호하는 측에서는 공개된 결투에서 일어난 이날의 살인에 대해 '정당방위' 내지는 '과실치사' 또는 '어쩔 수 없었던 불행한 사건'이었다는 주장을 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간에 로마의 뒷골목을 제집 안마당 인양 누비며 살아가던 두 남자 카라바조와 [토마소니] 사이에는, 그날의 사건이 있기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의 주먹다짐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평소에도 잘 알고 지내던 사이었거나, 그렇게까지 친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술자리와 도박판에서는 함께 어울려 지내던 사이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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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원인과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몇 가지의 버전이 "카라바조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해."라는 식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건 간에 사건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그동안 그 둘 사이에 쌓여있던 감정의 골이 폭발하면서 발생한 사건’이었을 거라는 버전에 힘을 실어주어도 좋겠다.


결투의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는데, 기록에 따라서는 도박으로 인한 빚과 [팔라코다](pallacorda) 경기(테니스 경기의 일종)에 대한 내기로 인한 분쟁, 또는 여자 문제가 언급되고 있으며, 여기에 여러 화자들의 갖가지 상상과 입담이 가미된 이야기가, 루머에 루머를 양산하며 사실인양 또는 누군가의 목격담 인양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중에 하나를 먼저 살펴보자. 이 버전에서는 당시 로마의 유명한 매춘부였던 [필리드 메란드로니](Fillide Melandroni)에 대한 카라바조의 질투를 결투의 원인으로 들고 있다. 이 여성은 카라바조의 모델이었는데 [토마소니]가 그녀의 포주 겸 기둥서방이었다고 한다.


이 버전의 세부 내용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카라바조가 칼로 [토마소니]를 거세시켰다고 하고, 살인은 카라바조가 [토마소니]를 거세하는 도중에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이라고도 한다. 이 버전에서는 카라바조와 [토마소니]가 [필리드 메란드로니]라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벌인 애정행각을 사건의 원인으로 들고 있기에, '삼각관계'를 주제로 한 막장 드라마가 인기를 얻게 되듯이 많은 이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고는 있지만 사실 그 진위여부는 알 길 없다.


이 사건이 발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애초 카라바조가 [토마소니]와 같은 인물과 어울렸다는 것에 있다. 여기에서 '만약 카라바조가 그와 어울려 지내지 않았더라면' 식의 가정은 아무 쓸모없는 짓일 뿐이다. 이미 카라바조는 로마의 뒷골목에서 악명 높은 인물이었기에, 그날의 상대가 [토마소니]가 아니었다 해도 언젠가에는, 또 다른 누군가와는 이런 류의 사건을 벌렸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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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소니]와의 잦은 다툼과 살인으로까지 이어진 그날의 결투에 대해, 정치적인 문제가 결합된 또 다른 버전이 흥미롭게 전해지고 있다. 이 버전에 따르면 당시 [토마소니]는 지역 내에서 악명이 높은 친스페인계 집안의 출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앞선 기록을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카라바조를 후원하고 도와주면서, 때로는 감옥에 갇힌 그를 빼내 주던 인사는 주로 프랑스 대사와 그와 친분이 있는 귀족들과 성직자들이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이라는 당시의 양대 강대국이 카라바조와 [토마소니]라는 거친 사내들의 정치적 배경이었으니 두 사람이 함께 한 술자리가 어떠했을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해 볼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란 말에는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대게의 남자들은 원래부터 정치문제나 스포츠 경기의 결과에 하나뿐인 제 목숨조차 기꺼이 거는,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동물로 태어났다. 이 버전에서 카라바조의 살인은 이제 도박이나 치정극을 넘어서 로마라는 ‘세상의 중심’에서 벌어진 친프랑스계 인물과 친스페인계 인물의 정치적 차원의 사건이 되어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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