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카라바조를 거장으로 성장시킨 [델 몬테 추기경]

22. 카라바조를 거장으로 성장시킨 [프란체스코 델 몬테 추기경]


카라바조는 성공에 대한 야망이 큰만큼이나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기 확신 또한 누구보다 강한 인물이었다. [프란체스코 델 몬테 추기경]의 적극적인 후원과 도움으로 로마의 화단에서 큰 명성을 얻고 난 후에도 그는 더 강력한 후원과 작품의 의뢰를 갈망하였다. 최고의 실력을 바탕으로 한 카라바조의 그러한 갈망은 화가로서의 그를 더 넓은 성공의 길로 안내하였고 그 결과 로마의 주요한 교회뿐만이 아니라 부유한 귀족과 고위 공직자로부터 작품의 의뢰가 끊이질 않게 되었다.


심지어 1606년에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인해 도피 생활을 이어가던 1610년 까지도 카라바조에게는 작품의 의뢰가 줄을 이었다. 카라바조가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저지르는 각종 사건 사고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의뢰가 계속된 것은, 카라바조의 작품을 인수한 의뢰자들 대부분이 일단 자신의 손에 쥐어진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만족감을 넘어 황홀함마저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고귀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카라바조에게 찬사를 보내면서 평생의 후원자이자 보호자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게 된 것이다.


카라바조의 기행은 이미 저잣거리에 떠들썩하게 퍼져 있었기에 어떤 경로로든 그들 또한 그것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관절 카라바조의 무엇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였고, 카라바조를 '종교화의 거장'으로 받아들이게 만든 것인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카라바조의 후원자들은 카라바조를 한 사람의 성숙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이 보호해야만 하는 '지상에 강림한 위대한 화가'라고 여긴 것은 아닐까?"

"그들은 카라바조의 천재적인 재능은 신에게서 부여받은 것이며, 그런 카라바조가 자신들의 곁에 온 것에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는, '신의 의도'가 내재되어 있을 거라고 여긴 것이었을까?


그렇기에 그들의 눈에는 카라바조가 '세상사에 있어서는 미성숙하였지만 예술적으로는 너무 성숙해 버린, 그래서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없는 천재'로 비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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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의뢰에 대한 카라바조(1571년 9월 - 1610년 7월)의 욕심 덕분인지 그가 화가로 활동한 약 18년 동안 숫자로는 94점에 이르는, 카라바조의 명성으로 보면 적어 보이지만 그가 화가로 활동한 햇수로 보면 상당한, 그래서 적다는 사람에게는 너무 부족하기만 하고, 많다는 사람에게는 충분하리만큼 넉넉한 카라바조의 작품이 현재까지 남겨져 전해오고 있다. 간단한 덧셈과 나눗셈만으로도 카라바조가 연간 5편 이상의 작품을 그렸다는 계산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시간은 화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간다. 카라바조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새 400여 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카라바조가 활동하던 이탈리아에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의 크고 작은 분쟁들이 있었고, 정치와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휩쓸고 지나갔다. 이러한 격동의 세월 속에서 카라바조의 어떤 작품들은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못한 채 소실되었거나 자취를 감춰버렸을 것이다. 그것들까지 고려한다면 카라바조는 적어도 연간 7편 이상, 어쩌면 그것보다 더 많은 작품을 그렸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대체 카라바조는 어떤 인물이란 말인가. 어떻게 그 많은 작품을 매년 그릴 수 있었단 말인가."

카라바조는 역시 카라바조다. 그의 불가해한 캐릭터를 이해하려는 것만큼이나 그의 작품을 이해하려는 것 또한 불가해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카라바조 작품의 행적을 쫓는 것은 그의 행적을 쫓는 것만큼이나 불가해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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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삶을 얘기함에 있어 [델 몬테 추기경]은 결코 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무명의 카라바조가 몇 단계를 뛰어넘어, 천재화가로서 성공의 문 앞에 도달할 수 있는 수준 높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런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설혹 주어진다고 해도 모든 이가 카라바조와 같이 그 기회를 부여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누구보다 완벽하게 준비된 화가였기에, 신으로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부여받았기에, [델 몬테 추기경]이 제공한 문을 활짝 열고 그 안으로 성큼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델 몬테 추기경]의 저택에서 카라바조는 로마의 최고 상류사회 문화를 접할 수 있었으며, 그와 그의 상류층 인사들의 미술과 음악, 건축 및 문화에 대한 미적 소양과, 세련되고 교양 있는 지식을 통해 그의 예술적 영감을 키워 나갔을 것이다.


'로마에서의 초기'(Beginnings in Rome(1592/95–1600))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그려진 <음악 연주자들(The Musicians), 1595>, <루트 연주자(The Lute Player), 1596>, <이집트 피신 중의 휴식(Rest on the Flight into Egypt), 1597>과 같은 작품들은 델 몬테 추기경과 그와 교류하던 상류층 인사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카라바조는 이 시기에 당시 로마의 길거리나 뒷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평범한 인물과 소재를 사용하여 <카드 사기꾼(The Cardsharps), 1594>과 <점쟁이 여인(집시)(The Fortune Teller), 1597>, <과일 바구니(Basket of Fruit), 1597>와 같은 그림도 그렸다.


이 시기에 그려진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의 내면에서는 [상류층의 고급문화]와 [저잣거리의 서민 문화]가 내적으로 충돌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월터 프리들렌더]가 말한 이 시기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상실감’의 발원지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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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의 카라바조는 [델 몬테 추기경]을 통해 누리게 된 [상류층의 고급문화] 속에서 '결국에는 한낱 이방인에 지나지 않는' 현실에서의 자신을 응시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 성공 덕분에 부족함 하나 없이 맘껏 돌아다닐 수 있게 된 저잣거리에서도 '또 다른 이방인'이 되어 버린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것이면서 저것이기도 한, 이것도 아니면서 저것도 아닌 '카라바조의 양면성'의 한 줄기가 여기에서 발원한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극명하게 대립되는 이 두 개의 문화 세계가 카라바조의 내면에서 서로 융합하면서 빛과 어둠을 색을 다루듯 자유롭게 다루었던 [카라바조만의 예술] 세계를 창조해 내었다는 것을 또한 그의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카라바조에게 일어난 이런 내적인 충돌과 융합을 이해한다면, 이 시기를 지난 후 그린 종교화에서 성인의 고귀한 모습을 서민의 모습으로 표현함으로써 사건의 전달력과 사실감을 높인 카라바조의 예술에 대해 좀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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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삶 전반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폭력과 연루된 각종 사건인데,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이 시기에는 그러한 사건의 기록이 남아있질 않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미루어보아, 이 시기에 [델 몬테 추기경]이 제공한 거주와 작업 환경이 카라바조에게 예술가로서의 안정감과 성취감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델 몬테 추기경]은 예술가 카라바조를 있게 한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따라서 [델 몬테 추기경]이 화가 카라바조가 천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은, 그가 비록 화가는 아니지만 그 또한 다른 방면에서의 천재였을 거라 생각해볼 수 있다.


"천재는 천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천재로 성장하는 것이다."

카라바조가 비록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채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델 몬테 추기경]을 만나지 못했다면, 만약 [델 몬테 추기경]이 카라바조가 천재 화가란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카라바조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카라바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델 몬테 추기경]은 카라바조를 거장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델 몬테 추기경]의 가히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후원을 등에 입은 카라바조는 점차 로마의 중심 화단과,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고 문화적 소양이 높은 상류층과 교회의 성직자들 사이에서 거장으로 회자되는 화가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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