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상의 미로와 날개에 대한 고찰

2. 이상의 미로와 날개에 대한 고찰



1.


꿈을 찾으려는 것보다 꿈을 꾸려는 것 자체가 더 힘들었을 일천 구백삼십 년 대의 경성에서, 이미 너무 깊숙이 빠져버린 이상理想의 늪 웅덩이를 허우적거려야만 했던 시인 이상은, 날개를 훨훨 저어 현실의 세계를 떠나고 싶었던 것 같다.

일단 발을 딛게 되면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경성이라는 도시는 시인 이상에게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가 갇혔다는 미로 라비린토스의 거대한 벽면 같아 보였을 수도 있다.



날개 /이상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리 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내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시인 이상(구본웅 그림)

그렇다면 이상을 가두었던 미로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수군거림이었을 수도 있었겠고, 하나를 채 정리하기도 전에 불쑥 튀어 오르는 무수한 환영들의 헝클어진 타래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인간을 타락의 길로 이끌고야 마는 돈의 마수이기도 했었을 것이고, 쾌락을 숲에서 이성을 마비시켜버리는 성性의 유혹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는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분명 스스로를 지식인이라 여겼겠지만, 젊은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다방에 죽치고 앉자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거나 커피를 마시며 누군가와 노닥거리거나, 단골 주점에 들러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경성의 길거리를 마냥 돌아다니는 것 밖에는 달리 할만한 것이라곤 없었던 암울한 시대적 상황이 이상이 빠져버린 미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만으로는 이상과 그의 날개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부족할 수 있다. 진정 그를 가둔 미로는 무엇이었으며 그가 그토록 하늘을 날고 싶었던 까닭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혹시 그 미로라는 것이 바로 그 자신의 천재성이 빚어내고 있던 심적 카오스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미로가 만들어진 이유는, 그가 미로에 빠져버린 원인은 분명 그에게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상, 그가 빠져버린 미로라는 것이, 사랑하는 외아들인 이카로스와 함께 자신의 손으로 만든 미로에 갇혀야만 했던 천재 장인 다이달로스처럼, 그렇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가 빠져버린 미로의 벽은 넘을 수도 없고 고개 내밀어 저 편을 훔쳐보지도 못할 만큼 높고 견고한 ‘통곡의 벽’과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이상은, 그 미로를 벗어날 방법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그의 시 <날개>를 보자면, 다이달로스가 그의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미로 라비린토스를 빠져나갔던 방법처럼 어깻죽지 어딘가에 날개를 달고서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야만 한다는 것을 이상은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이달로스와 같은 신통방통한 손재주를 타고나지 못한 이상은 물리적으로는 날개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혹시 내가 당시의 경성에서 이상과 같은 상황에 빠진다면 어떤 궁리를 하고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마냥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을 원망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에 분명 무엇인가는 하려 들것이다.


어떤 바람은, 그것이 간절하다면, 이루어지기도 하나 보다. 어느 날 이상의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나게 된다. 어깻죽지가 아니라 하필 왜 겨드랑이인지는 별도의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할 것 같지만 어쨌든 자신의 몸에 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른 하늘은 어떠했을지는, 그 날개를 퍼덕여 보았던 시인 이상 자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상에게 날개는 미로를 벗어나게 해 줄 구원의 수단이었고, 날아오름은 현실에서의 벗어남 또는 탈출이라는 행위와 이음 동어가 되었다.

하지만, 이상의 시 <날개>를 꼼꼼하게 읽고 곰곰하게 생각해본 이라면, '다시 돋아라'라는 문장이 그 이전에 이미 날개가 돋아 났었음을 의미하기에 무슨 연유에서인지 날개를 잃어버렸다는 것과, 인공의 날개를 달았었을 수는 있지만 다시 날아올랐었다는 기록의 부재와, 그의 간절한 바람처럼 다시 날개가 돋아났다는 기록의 부재로 인해 독자로서의 미로에 빠져들 수도 있다.


미로는 정녕 벗어날 수 없는 견고한 마법의 성城인 것일까. 신과 인간에게서 태어난 천재 장인 다이달로스조차 미로를 탈출한 대가로 외아들 이카로스를 잃어야만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니, 한낱 범인에 불과한 우리 인간이 미로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미로를 쌓아 올린 벽면과 벽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뿐이란 말인가.


다시 이상에게로 돌아가 보자. 이상의 미로가 그가 살아가던 일천 구백삼십 년 대의 경성이라는 공간과 시간이었듯이, 우리의 미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라는 시간과 공간일 것이다.

만약 이상의 날개가 구원을 통한 영혼의 정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미로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오직 ‘신’의 주머니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행여 나의 겨드랑이에서도, 나의 어깻죽지에서도 인공의 날개가 돋아나기를, 그래서 다시 한번 날아오르게 되기를, 새벽 첫 기도의 간절한 바람처럼 기다려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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