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지혜를 사랑하는 자와 사색하는 자

5. 지혜를 사랑하는 자 Philosophos와 사색하는 자



● 지적 유희와 사색하는 자

살아가다 보면, 제대로 살아보려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살아가다가 보면 '지혜로워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해 머리보다는 마음이 먼저 깨닫게 된다.

책상에는 늘 몇 권의 책이 펼쳐져 있고 글쓰기와 사색하기와 산책하기에 시간을 아끼지 않는 이라 해도,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것의 답일 것 같은 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며 그 과정과 결과물을 지혜라고 여기며 쌓아가는 일은, 그것이 본능을 따르는 것이라 해도 여간 어렵고 성가신 일은 아니다.


비록 선명한 답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사색이 걸어가는 그 길은, 지식의 저작거리를 휘저으며 돌아다니는 ‘생각하는 자의 지적 유희의 산책길’이라 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왜 지적 유희가 필요한 것일까."

"우리는 왜 지적 유희를 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지혜는 지식의 지적 유희를 통해서 다듬어져 발현되기 때문이다. 비록 모든 지식이 지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식은 지혜의 원재료이기에 지혜를 깨달아 가는 것은 지식을 얻어가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혹자들은 이 ‘지적 유희’를 ‘사색’ 또는 '사유'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것을 사색이라 부르든 사유라 부르든 지적 유희의 궁극적인 목표는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사전적 의미에서의 사색과 사유는 다음과 같다.

*사색思索: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름

*사유: 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

사색은 현재를 중심으로 하여 어떤 문제를 이성적으로 따져 해결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사유는, 어떤 주어진 문제에 대해 개념에서부터 두루 따지면서 해결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개의 경우 인간의 지적 유희는 사유라기보다는 사색이라고 할 수 있게 된다.



● 지혜를 사랑하는 자 피타고라스

“인간은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누가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 고대 그리스의 학자 피타고라스(Pythagoras of Samos, c. 570 – c. 495 BC)는 자기 자신은 지혜로운 자(현인, Sophos)가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자(Philosophos)라 하였다.


위대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이기도 한 피타고라스조차 자신은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는 고백은, 비록 그것이 그의 겸손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고 해도,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지혜를 추구하고 있는 수많은 후학들을 절망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고백은 그를 수학자나 철학자에 머물지 않게 하고 ‘현자賢者와 무한이 가까워진 자’라는 칭호를 부여케 한다. 결국 진정 ‘지혜를 사랑하는 자’라 부를 수 있는 이는 ‘지혜로운 자와 무한이 가까워진 자’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중에 누가 과연 피타고라스와 같은 호칭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단지 지혜를 사랑하려는 노력일 뿐이라서 지혜를 사랑하는 자조차도 될 수 없다면, 인간은 결코 지혜로워질 수는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지혜를 사랑하려는 노력’만이 지금을 살아가는 생각하는 자가 해야 할 의무이자 권리란 말인가.



● 지혜를 사랑하는 자와 사색하는 자

지식은 쌓아가는 것이고 지혜는 깨쳐가는 것이다. 하지만 쌓음과 깨침을 구분하지 못하듯이 무엇이 지식이고 어떤 것이 지혜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운데 어떻게 지혜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지혜의 실체는 꼼꼼 숨겨져 찾아낼 수 없는 것일까. 지혜로운 자가 된다는 것은 사막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으려는 것과 같이 그리 어려운 일인 것일까.


답을 찾을 수 없는 허공에서 변명을 이어 본다. 나는 이성적이다. 그러니 무엇(what)을 사랑해야 하는지 그 대상을 명확히 모르는데, 왜(why) 그것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고, 어떻게(how) 그것을 사랑할지를 모르는 것은 이성적으로 너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다시 질문에 빠진다. 지혜란 것의 실체를 지혜를 사랑하려는 노력만으로 더듬을 수 있게 될까. 지혜는 쉽게 문을 열지 않는 비밀의 정원 중앙에 가꾸어 놓은 빛깔 좋고 향 좋은 꽃밭인 걸까.


어쩌면 지혜에 대한 사랑이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질 수 없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을 혹시 사랑이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혜를 사랑하려는 노력을 넘어서 지혜를 향해 사랑을 갈구하는 자가 진정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자(philosophos)’라 해도 좋겠다. 어쩌면 그 허망한 짓을 멈추지 못하는 미련한 자가, 그 사랑에 중독된 자가, 그것을 지적 유희라고 믿는 자가 ‘사색하는 자’라고 불릴 것 같다.


피타고라스.jpg

피타고라스의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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