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 할 것 없이 콧물 자국을 줄줄 달고 뛰어놀던 그 시절에 올케 바닥과 팽이 돌리기, 제기차기와 자치기, 구슬치기와 딱지치기, 땅따먹기와 전쟁놀이는 시골 동네 아이들의 좋은 놀이였다. 학원이나 방과 후 학습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고 숙제조차도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이나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후다닥 해치울 수 있었던 행복한 시절이었으니, 오후 내 흙을 묻히며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것은 오전에 학교를 가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아이들의 일상이었다.
놀이의 대개는 도구를 준비해야 한다거나 규칙을 숙지해야 하는 것과 같이 약간의 준비과정이 요구되었지만 동전 던지기 놀이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탑이 그려진 동전 하나 외에는 어떠한 도구도 필요치 않았고 규칙이라고는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동전 던지기 놀이는, 손에 쥐어 든 동전에 적당한 힘을 주어 눈앞 가까이에 던지고, 간혹은 멀리 던져버리는 어설픈 놈이 더러는 있었지만, 그림이 있는 앞면과 숫자가 있는 뒷면 중에 어느 면으로 멈춰 서게 될지를 찍어 맞히면 되는, 50%라는 높은 확률을 가진 놀이였다.
어릴 적의 그 많던 놀이 중에 유독 이 놀이가 기억을 떠나지 않는 것은 '절반의 성공'을 뜻하는 이 50%라는 숫자 때문일 수 있다. 막상 살아보면 알게 된다. 인생은 결코 절반의 성공을 거둘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행정구역상으로는 도시라는 명칭이 붙어 있긴 했지만 그 끝자락에 겨우 걸려있었기에 여느 시골마을과 같았던 작은 동네에서, 별 다른 놀이도구가 필요치 않은 놀이라고는 공터에서 그냥 뛰어노는 것이나 들판을 싸돌아다니는 것이나, 나무 막대기 하나 주워 들고 뒷산을 오르내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시절이 그렇다가 보니 아무리 문질러도 벗겨지지 않는 땟국이 잔뜩 눌어붙어, 오만상을 잔뜩 짓고 있는 양철냄비 같은 검누런 둥근 금속은, 아무 때나 어느 곳에서나 동네 아이 누구나의 손에 쥐어질 수 있었던 작지만 요긴한 놀이도구였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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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별한 일들과 그렇지 않은 일들이 뒤죽박죽 발생했다가 어떻게든 지나가는 사이에, 마냥 길 것만 같았던 그 시절은 훌쩍 지나가 버렸고, 어쩌다 여기까지 온 것인지, 이마와 가슴에는 도적떼처럼 찾아든 세월이 흔적을 잔뜩 남겨 두었다. 일탈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지만 아주 가끔은 그 시절의 사내아이를 떠올리며 거실 바닥에 동전을 던지곤 한다.
바닥에 부딪힌 동전이 ‘딱’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구르기 시작하면, 동전의 모서리로 난 좁은 면으로 곧게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일어나곤 한다. 하지만 던져진 동전은 언제나 앞면이나 뒷면만을 드러내서 누울 뿐 단 한 번도 모서리로 서질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바닥을 빙글빙글 뒹굴던 동전이 금세라도 멈춰 설 듯 핑핑 숨 가쁘게 돌아가는 마지막 순간이 지나고 나면, 세움을 향해 일었던 긴장은 금세 체념의 벽을 향해 돌아앉게 된다.
“그래, 동전이란 원래부터 그런 것이야. 곧게 서는 일이란 동전에겐 결코 없는 거야.”
어차피 눈앞에서 일어난 분명한 일에 대해선 그 어떤 사설을 구구절절 늘어놓은들 뭣 하나 달라질 것이 없기에, 동전이 멈춰 선 후 허공을 향해 둥그렇게 드러누운 모습 그대로를 ‘놀이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하지만 동전을 던지는 또 다른 순간이면 '어쩌면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목젖이 다시 꿀꺽 오르내리게 된다. 그 모습이 어리석어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애초 이방 여행자로 살아갈 운명이 점지되어 있는 한 사내에게 내재된 본능일 뿐이라고, 그래서 어쩔 도리 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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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동전이 구르기 시작하면 굳이 멈춰 서게 해야 할 이유란 건 아무것도 없는 거야.”
바닥을 구르는 동전은 그림이 있는 면이든 숫자가 있는 면이든 반드시 멈춰 서게 되어 있다. 만약 구르는 동전에 어떤 물리적인 행위를 가한다면, 그것이 결과에 영향을 주긴 하겠지만 그 결과란 것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라는 분명한 예측을 내놓을 수는 없으니 괜한 짓이 되기 십상이다.
삶이란 뚜렷한 여정 없이 오르게 되는, 먼 것 같지만 짧기만 한 여행길과도 같은 것이다. 삶이란 망각과 체념의 위안을 찾아가는 사색자의 길 걷기 같은 것이기도 하고 꼬여버린 일상의 실타래를 풀어내려는 방랑자의 길 걷기 같은 것이기도 하다.
현명한 여행자란 그란데 사이즈 잔을 가득 채운 카페 아메리카노에서 뜨거운 김이 빠져나가길 느긋하게 기다리듯이, 눈앞에서 굴러가고 있는 동전이 제 알아 멈춰 서기를 마음 초조함 없이 기다릴 줄 아는 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들이킬 수 있을 만큼의 공기만을 호흡하고 이미 일어난 현상을 애써 되돌리려 하지 않으면서, 비록 자신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다'라고 변명하지 않는, 그렇게 동전을 던지는 다음 순간을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이가 현명한 인생 여행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