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라면, 고흐의 마지막 붓질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파리를 벗어나 한 시간 남짓 시골길을 달려온 자동차는 <오베르 쉬즈 우아즈>라는 우아한 이름이 붙어있는 <고흐의 마을>에 도착한다.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길에 옹기종기 떼 지어 붙어 있는 낡은 집들이며 언덕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오래된 성당, 누렇게 익어가는 밀밭이며 티끌 하나 없이 높고 파란 하늘, 초록의 나무며 하얀 구름, 들판을 불어 가는 바람이며 후드득 날아오르는 까마귀, 환하게 웃음 짓는 둥근 해바라기며 잔주름이 자글자글한 노부의 갈색 삶이, 낮 햇살을 느긋하게 반사하며 고흐의 그때를 지키고 있다.
몇몇 안내판에 박재된 고흐의 그림 몇 점과 그의 서른일곱 해의 삶, 그리고 마지막 70여 일 동안의 곤궁한 삶이 남겨 놓은 흔적들을 더듬다 보면 여행자의 발걸음은 구불구불한 마을의 골목길과 밀밭 사이로 난 좁은 들길을 미처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너른 들판 가득 누런 밀밭이
제 한껏 마구 흐트러져 있을 것만 같은 마을
밀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걷다 보면
키 큰 삼나무 한 그루가
하늘을 향해 마구 자라나 있을 것만 같은 마을
낮 빛에 고개 겨우 치켜든 밀밭 사이로
바람 한줄기 푸르르 불어 가면
까마귀의 날개 짓 같은 검누런 흙먼지가
떼 지어 후루룩 일어날 것만 같은 마을
파란 하늘을 떠돌던 하얀 구름 뭉치가
아침 파도의 포말처럼 우르르 밀려오면
제 속살까지 단숨에 젖어버릴 것만 같은 마을
길을 잃은 여행자의 손에도
붓 한 자루와 캔버스 하나
아무렇게나 툭 쥐어줄 것만 같은 마을
고흐와 동생 테오가 담쟁이덩굴에 안겨
애틋한 긴 잠에 빠져든
마법에 걸린 성과 같은 마을
빈센트는 그 곤궁함을 어떻게 버티어 내었을까.
안경알을 깎으며 생계를 이어간 스피노자와 경제력이 없었기에 결혼을 할 수 없었던 칸트가, 곤궁을 벗 삼은 자유로운 사색 덕분에 그들의 철학을 완성하였노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 또는 그녀는 단지 무책임한 인문학적 허영의 덩어리에 불과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정신적인 허영일뿐이다.”는 알베르 카뮈의 말을 굳이 인용할 필요는 없을 거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려 본다.
밀밭 사이로 난 소로를 바쁠 것 하나 없이 느릿느릿 걸어 다니다가 바람에게서 듣게 된다.
"그는 자연과 사물의 [인상](Impression)을 그림이라는 상형문자로 그려낸 [인상주의 철학자](Impressionism Philosopher)였어."
그리고 언젠가의 후일에 그를 찾아올 누군가가 그의 [인상주의 철학]의 문을 열고 들어와 그의 들판과 그의 밀밭 사이에 난 들길을 벌거벗은 채로 걸어 다니게 될 거라고 그가 중얼거렸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그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며 아직 오베르를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기다리고 있어요. 아직은 기다려야 한다니까요.”
고흐가 던져 놓은 상형문자를 읽어내려 애를 쓰는 사이 진청색 그림자 하나가 그와 그의 동생 테오의 무덤 위에 작은 해바라기 두어 송이를 얹어두고서는 종종걸음으로 멀어져 간다.
모서리 뭉개어진 상상이 낮 햇살이 녹인 유화물감을 잔뜩 이겨 바른 채 그인지 그녀인지, 낯설지 않은 뒷모습을 길게 좇아 그린다.
머릿속에서 머물던 고흐가 가슴에 안겨드는 마을, 오베르의 늦은 오후의 햇살이 그렇게 뉘엿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