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카뮈와 샤르트르를 만나는 날

14. 카뮈와 샤르트르를 만나는 날


이른 아침부터 우중충하던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등가방에 챙겨 넣었던 우산을 꺼내 들고 머리와 몸을 가린다. 비 내리는 파리는 스산하긴 하지만 운수 좋은 날에 만난 비밀의 정원처럼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드물어진 인적 덕분에 행여 발걸음 재촉당할 일은 없을 테니 이런 날의 파리가 돌아다니기에는 더욱 좋다.


에펠이 바라보이는 센강의 강변에 서서 굵어진 비를 잠시 피하기로 한다. 수면이 튕겨 올린 물방울의 파편이 물안개를 피우고 있다.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보지만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의 파리는 오래전에 끊었던 담배마저 찾게 만든다. 괜한 긴 숨을 허공에 뿜어낸다. 흔적 없는 말간 연기가 멈춰버린 시간 속으로 사라져 간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에 시간이 다시 흐른다.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우산을 접어 내리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다. 싸늘하긴 하지만 그리 차갑지는 않다.

“왜 파리의 하늘을 가렸던 걸까.”

“무엇 때문에 우산 속으로 숨어들었던 것일까.”

늘 그래 왔지만 스스로 만들어낸 질문에는 답을 달지 않는다. 이런저런 사색으로 파리의 시간을 센강의 강물처럼 흘려보낸다.


*** ***


맺혀있던 물기를 툭 툭 털어내고 걸어왔던 강변길을 되돌아간다. 사실 물살이 흐르는 방향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지금 이 걸음을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야 할지, 강물을 따라 내려간다고 해야 할지는 알 수 없다. 파리를 찾을 때면 늘 센강을 걸어 다녔지만 지금껏 물의 흐름을 헤아려보지 않았나 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센강은 파리를 흐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충분하기에.

그런 까닭 때문일 게다. 센강을 오르내린 기억에서는 ‘내려가는 것’과 ‘오르는 것’이 방향 없이 섞여 있는 것은.

강폭이라 봐야 그리 넓지 않은 데다가 물살조차도, 어릴 적 동네를 돌아다니던 뒷집 누렁이처럼 마냥 순하기만 하니 ‘방향을 확인’하려는 괜한 짓거리 따위는 애초 시도조차 안 했을 수 있다.


오르세 미술관과 센강에 걸쳐 놓은 몇 개의 다리를 지나 카르티에라탱(Quartier Latin) 지역에 도착한다. 파리의 인문학적 지식의 상징이라는 소르본 대학(Sorbonne Universite)을 지나서 1886년에 오픈했다는 카페 [르 바자르](Le Balzar, Brasserie Balzar)를 찾아가는 길이다. 파리의 두 지성 [알베르 카뮈]와 [장 폴 샤르트르]가 배고픔과 커피 마름을 해결하면서 그들 식의 논쟁을 벌이던 곳이라고 한다. 그들의 체온이야 이미 사라져 버렸겠지만 허기진 배도 채우고 '혹시라도' 하는 마음도 축일 겸해서, 오늘은 꼭 찾아보기로 한다.


르 바자르는 분명 소르본 대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도, 사실은 대학 건물 모서리에 바로 붙어있다시피 하는데도, 정확하지 않은 안내책자의 표기 탓에 몇 개의 좁은 골목을 지나고 차길을 건너 둘러다니다가, 결국에는 여행자의 ‘감’을 통해서야 도착하게 된다.


조바심을 내지는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르 바자르의 실내 입구에서 잘 생긴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는다. 한 눈에도 멋을 한껏 부린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그레이 실버의 파리지앵들과 파리지앤느들이 늦어진 점심식사를 여유 있게 즐기고 있다.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카페라서 그런지 서빙하는 직원들과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 영어라곤 한마디도 못하는 카페 직원을 쳐다보는 나의 눈빛처럼, 프랑스어라곤 한 마디도 못하면서 이곳까지 찾아온 이방인을 바라보는 직원의 눈빛에서 당황스러움이 느껴진다.

커다란 손짓에 표정까지 더해진 영어 몇 마디로 프랑스어 메뉴판을 어렵사리 영문 메뉴판으로 바꾼다. 영어로 작성된 메뉴판이라곤 하지만 여행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허술하기 짝이 없다.


작게나마 일어난 어수룩한 소란을 몇 사람이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 같더니 뒷자리에서 조용하게 식사 중이던 은발의 고운 노부인이 유창한 영어로 푸아그라를 포함한 코스요리를 친절하게 추천한다. 시간의 흐름보다 더 많은 것이 남겨지는 파리의 오후가 아늑하고 고요하게 흘러간다.


*** ***


카페를 나선다. 서재의 누런 종이에 잠들어 있던 샤르트르와 카뮈를 흔들어 깨워 늦은 오후의 파리를 함께 걸아간다.

세상의 찬바람에 몸을 떨어야만 했던 스물의 시간,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종이돈 몇 장을 잡을 수 있을 때면 문고판 책 한 권을 집어 들고서는 굶주린 영혼을 채워 나갔다. 그때는, 비록 배가 고팠지만 영혼의 허기를 채울 수 있다면, 답이 없을 것만 같던 현실을 어떻게든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믿어야만 했다.


쌓여가는 지식만큼 맑아진 혜안을 어느 날인가는 가질 수 있을 거라고, 그러면 어느 정도라도 나의 삶을 가늠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지만, 막상은 흐린 안경 너머로는 안개 뿌옇게 낀 이방인의 실루엣만이 가물하게 보일 뿐이었다.


여행자로 찾아온 이곳에서도 이방인의 길을 걸어간다. 파리의 이 길에서, 겨우 쌓아두었던 지식은 마른 파편이 되어 바람에 날려 다닌다. 낮 빛을 반짝이던 조각들이 갈증에 시달린다. 이럴 때면 방어기제가 제 알아 작동하는 법이다. 변명이 필요할 때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카뮈와 샤르트르를 뒤따르던 발걸음은 파리의 한 갈림길에서 막다른 골목길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나의 길과 그들의 길이, 다시 누런 종이에 박혀 새겨진다. 파리의 시간은, 그것이 아무리 짧은 토막이라 해도, 금세 아련해지는 신묘한 재주를 부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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