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비 내리는 밤의 센강

16. 비 내리는 밤의 센강


비가 오는 밤이면 괜히 센티멘털해지는 것이, 파리라서 그런가 보다. 일찌감치 내린 어둠이 센강을 검게 물들이자 파리지앵과 파리지앤느의 발걸음은 벌써 돌바닥 위를 떠나갔고 강변에 늘어선 거리의 가게들도 서둘러 문을 닫았다. 창가에 다가서 봐도 눈에 띄는 것이라곤 촛불처럼 불을 밝힌 가로등 몇 개와 비에 젖은 진회색의 건물들 뿐이다.


귀를 세우고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본다.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와 바람에 실려 온 강물 흐르는 소리가 빗물 떨어지는 소리에 뒤엉켜 있다. 비 오는 날의 파리는 수채화의 말간 농담보다는 유화의 끈적한 추적거림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이런 날이면 거리에서도 강변에서도, 사람 형상의 밤 그림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비 내리는 밤의 파리는 많은 것들을 감추어 버렸지만, 아름다움만은 숨기려 하지 않는다.


밤 빗물과 몰래 난 정분을 핑계 삼아 호텔 밖으로 나선다. 우산을 받쳐 들고 가로등과 가로등을, 횡단보도와 횡단보도를 지나 센강에 도착한다. 파리를 흐르지 않는 센강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비 내리는 밤의 센강의 물결은 예술의 다리에서 바라보는 파리의 노을만큼이나 아름답다. 강물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수면에서 반짝이고 있는 자잘한 불빛이, 마치 마른 안개꽃의 조막만 한 꽃잎들이 밤하늘에 마구 흩뿌려지는 것 같아서 영혼마저 몽롱하게 만든다. 이대로 밤 센강의 낭만에 풍덩 빠져버려도 좋겠다.


센강의 다리 위에 서서 파리의 촛대, 밤의 에펠탑에 불꽃을 지핀다. 황홀한 눈의 호강에 여행자의 감상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파리는 센강의 낭만으로 설계하고 파리지앵과 파리지앤느의 사랑으로 일군 것일 수 있겠다."


가만히 보면 센강을 흐르는 강물에는 연인들의 은밀한 속삭임이 밤 불빛의 반짝임처럼 자유롭게 떠다니는 것 같다.


발바닥이 파리의 느낌을 알아차린 것을 보니, 비로써 이방 여행자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었나 보다. 하긴 이젠 그럴 만도 하다. 올 만큼 와봤고 볼 만큼 봤으니, 돌아다닐 만큼 돌아다녔고 느낄 만큼 느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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