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의 다리를 지나서 퐁네프의 돌바닥 위에 멈춰 선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의 한 장면 같이 폭죽의 불꽃같은 사랑과 독주 같은 자유가 센강의 물결 위를 떠다닐 것만 같은 다리가 퐁네프이다.
퐁네프라는 명칭은 파리의 센강을 가로지르는 아홉 번째 다리에 붙여진 이름이다. 프랑스어로 다리를 뜻하는 단어인 '퐁(Pont)'과 새롭다는 뜻의 단어인 '네프(Neuf)'가 결합된 명칭이 ‘퐁네프(Pont-Neuf)’이니 영어로 보자면 New Bridge, 즉 ‘새로운 다리’라는 밋밋한 이름의 다리가 퐁네프이다.
하지만 퐁네프를 언어적인 해석에 기대려 들지 말고 ‘시떼 섬을 가로질러 센강의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고 있는 파리의 다리’를 일컫는 하나의 낭만적인 고유명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새로운 다리’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퐁네프를 ‘파리의 새로운 다리’라고 말한다면 상당히 어색해질 것 같다. 사실 퐁네프는 파리에 있는 다리 중에서도 오래된 다리에 속하는 편인데도 새로운 다리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은 다리가 가진 역사적인 배경 때문이다. 퐁네프의 지나온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여도 좋을 것 같다.
16세기 당시의 파리 지도를 보면 시테섬에는 퐁노트르담(노트르담 다리, Pont Notre-Dame)과 퐁오상주(Pont au Change), 퐁생미셸(Pont Saint-Michel)와 프티퐁(작은 다리, Petit Pont)라는 네 개의 주요한 다리 이외에도 뫼니에 다리(Pont aux Meuniers)라는 특수한 다리가 하나 더 있었다. 이 다리들 중에서 뫼니에 다리는 물레방아를 돌리기 위한 목적의 다리였기에 시민들의 통행을 위해 늘 개방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 다섯 개의 다리 중에서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시테섬 상류에 있는 퐁노트르담과 프티퐁은 로마시대에 센강을 건너 다니기 위해 돌로 만든 석조 다리이고 나머지 다리들은 나무로 만든 목조 다리였다. 그때까지 파리 시민들이 센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이들 다리를 이용하거나 나룻배를 이용해야만 했다.
시테섬과 그 인근 지역은 루브르 궁전과 파리 시청, 노트르담 대성당이 모여 있는 파리의 중심지역이었다. 도시로서의 파리가 성장함에 따라 인구가 점차 늘어났고 이에 따라 센강을 건너 다니는 통행량 또한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기존의 이들 다리와 나룻배 만으로는 늘어난 통행량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시테섬의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새로운 다리의 건설이 필요하였다. 이에 앙리 3세가 재임하고 있던 1577년에 다리의 건설이 시작되어 앙리 4세가 재임하던 1607년에 다리가 완공되었다. 공사에만 약 30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이다.
길이 238m에 폭 20m에 달하는 퐁네프는 개통과 함께 파리에서 가장 긴 다리이자 매우 혁신적인 다리로 유명하였는데, 당시 파리에 건설된 다리 중에서 다리 위에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최초의 다리이자 다리의 상부가 포장된 최초의 다리였다. 다리가 건설될 때는 가까이에 있는 루브르 궁전의 이름을 따서 ‘퐁루브르(루브르 다리'(Pont du Louvre)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원래 나무로 만들어진 것을 세월이 흐르면서 몇 차례의 크고 작은 개축과 보수를 통해 지금과 같이 석조 다리가 되었는데, 당시에는 파리 시내에 만들어진 혁신적인 양식의 새로운 다리였기에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퐁네프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퐁네프는 남쪽과 북쪽 2개로 나뉘는데 그 가운데가 시테섬의 끝자락쯤에 걸쳐있다. 다리 중간에는 반원형으로 돌출된 돌로 만든 발코니 공간이 있어서, 그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강물을 내려다보면 마치 센강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만들었다. 다리 난간 아래에는 괴물 형상의 부조인 마스카롱이 새겨져 있고 다리 중앙에는 앙리 4세의 기마상이 웅장하게 서있다.
발코니에서 바라다보이는 파리와 센강의 풍경은 파리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풍경 중에 하나로 손꼽힌다.
파리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성직자와 여자, 백마를 만나지 않고서는 퐁네프를 건널 수 없다.”
이 말처럼 퐁네프는 완공과 함께 파리의 교통과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퐁네프는 개통 당시와 그 후로도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들만의 인생극을 펼치는 파리의 명소였다. 그 시절의 퐁네프는 센강을 지나다니는 일반 서민들 이외에도 아이와 여자, 광대와 마술사, 협잡꾼과 장사치, 악사와 화가, 범죄자와 경찰, 귀족과 성직자들이 함께 뒤엉켜 북새통을 이루는 장소였다고 한다.
지금의 퐁네프에서는 그러한 풍경을 상상하기 어렵다. 강물이 찰랑이는 소리나 바람이 불어 가는 소리보다는 자동차의 바퀴 구르는 소리와 관광객의 목소리가 더 크다.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일 뿐이다. 이제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할 시간이다. 밤의 파리는 이방인을 더욱 센티멘털하게 만든다.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