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파리의 마레지구(Marais district) 주택가 한가운데에 개관한 피카소 뮤지엄(Musée national Picasso Paris)은 1973년 피카소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생전 컬렉션 약 3000여 점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 프랑스의 국립미술관이다.
뉴욕의 모마나 런던의 테이트 모던과 같은 미술관과 비교하자면 규모면에서 작기는 하지만 피카소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충분하다 할 만큼 속이 꽉 찬 아름다운 공간이다.
피카소 뮤지엄은 17세기 중반에 세워진 바로크식 살레 저택(Salé)을 피카소의 사망한 바로 다음 해인 1974년부터 10년 동안, 프랑스 현대 건축가 롤랑 시무네(Roland Simounet)에 의해 뮤지엄으로 재탄생하였다.
생전에 이런 저택에서 생활하며 작업하는 것을 좋아했던 피카소에게 이 살레 저택은 그를 가장 만족시켰던 곳이었다고 하니 파리의 피카소 뮤지엄이야말로 피카소의 삶과 예술을 느낄 수 있는 가장 피카소다운 뮤지엄이라 할 수 있다.
자료를 보면 이 저택에는 피카소의 회화작품 2백여 점과 조각 작품 158점 이외에도 소묘 1천5백여 점과 에칭 1천6백여 점, 부조작품 29점에 88점의 도자기와 그의 자필 원고가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작품들이 한꺼번에 전시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저택은 ‘세상에서 피카소의 작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컬렉터는 바로 나’라는 피카소의 말을 수긍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피카소의 작품들 이외에도 드가와 세잔, 마티스 외에도 쇠라와 루소, 키리코처럼 피카소의 예술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 주변 작가들의 작품들 또한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들 대가들의 작품을 그저 ‘덤’이란 표현으로 묶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곳 피카소 뮤지엄에 전시된 그들의 작품들은 미처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마주치는 것들이기 때문인지 관람객의 시선에서 살짝 벗어나게 되는 것 같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규모의 경제]처럼 양적으로 넉넉한 작품의 규모와 여기에 더해진 큐레이터의 기획력은 뮤지엄의 전시 능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원래 넉넉한 곳간에서 인심이 나듯 법이다.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시대별, 특징별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관 각각을 꾸며 놓았고, 특별전시실에서 열리는 특별전에서는 말 그대로 '특별한' 주제를 기반으로 피카소와 그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이 모든 것이 피카소 한 사람에 대한 것이라니 그저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다.
누구보다 다양한 작품적 변화 또한 스페인 출신의 파리지앵, 파블로 피카소의 특징이기에 시대별 작품의 변화와 그의 삶을 연관시켜 이해하려는 시선은 파리의 피카소를 만나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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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쟁이가 될 것 같았던 십 대의 어느 날, 서쪽으로 난 창을 넘어온 오후의 햇살 줄기가, 담배연기 같이 피어오른 먼지에 부딪혀 뽀얗게 산란되고 있을 때 피카소의 작품을 처음 만났었다.
뭐랄까, 그 첫 느낌을. 난해하다고 하기보단,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도 그것을 읽어내지 못하는 답답함이었달까. 통속적인 표현을 빌어 표현하자면, 시간과 지식의 숙성이 필요할 것만 같은 막연한 먹먹함이 멍해진 십 대 소년의 눈 속으로 밀려 들어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길을 어찌 걸어왔건 세월은 흘러갔고 숙성과 체념은 하나의 항아리 속에서 가끔 끓어 넘치기도, 꾹꾹 눌려진 채 잠잠히 잠들어 지내기도 하였다.
이제 거리로 나온다. 바로크식 저택과 주택이 이어지는 마레지구를 걸어 다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주택가를 벗어나자 작은 가게들과 카페가 이어진다. 마레지구를 파리의 젊음이 넘치는 곳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여자 꽁무니 부지런히 따라다니고, 어딘가 허세가 느껴지지만 자기 확신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한 예술가를 떠올린다.
마레지구에서까지 그의 중년이나 노년을 떠올려야 할 필요는 없겠다. 덩달아 가벼워졌던 걸음이 에스프레소 향기에 끌려 작은 가게의 문을 밀어 들어선다.
1968년에 프랑스는 상속인이 상속세를 현금 대신에 예술작품으로 대납할 수 있게 하는 법령을 재정하였다. 단 상속세를 대납하고자 하는 예술작품이 '프랑스 문화유산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인정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이것에 해당한다.
이렇듯 오직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허용되는 이것을 [dation]이라고 하는데 dation을 하나의 단어로 번역하기는 어렵다. 영문에서 dation은 '주는 것 또는 양도, 수여 행위이지만 기증이나 증여처럼 자유롭지 않은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피카소가 사망한 1973년 당시 국립 뮤지엄(national museum)의 큐레이터인 도미니크 보조(Dominique Bozo)가 피카소가 생전에 소장한 작품들 중에서 dation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선정하였고 장 레이마리(Jean Leymarie)의 검토를 거쳐 1979년에 비준하였다. 위대한 화가 피카소의 작품들과 소장품들이라고는 하지만 선정에서부터 비준까지 무려 6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이다.
여기에는 피카소가 작품 활동을 한 전체 시기에 걸쳐 모든 기량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조각 작품의 컬렉션은 아주 뛰어나면서도 진귀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6년 파블로 피카소의 뮤즈이자 두 번째 부인인 재클린 피카소(Jacqueline Picasso)가 사망하자, 그녀의 딸은 새로운 dation으로 상속세를 납부하겠다고 제안했고 이 과정에서 구매와 증여를 통해 피카소 뮤지엄 측이 더 많은 작품들을 취득하게 되면서 현재의 컬렉션을 이루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