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서는 아나키스트(anarchist)를 '무정부주의를 믿거나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나키스트가 곧 무정부주의자'를 의미한 다는 이 설명은 국어사전에 수록된 것이니만큼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헙수룩하게 느껴진다.
아나키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다른 문화권에서 들어온 것이다 보니 '아나키스트 = 무정부주의자'라는 공식은 누군가의 번역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나키스트를 [무정부주의자]라고 그 범위를 국한하는 것에는 적지 않은 허점을 갖고 있다.
아나키스트는 '아나키즘을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는 이들'이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적절하다.
아나키스트를 [무정부주의자]로 표현한 것은, 혹은 [무정부주의자]만을 떠올리게 설명한 것은, [아나키즘]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아나키즘은 비단 [정부]뿐만이 아닌 [국가와 민족주의]를 넘어 [자본주의]와 같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통제하거나 억압하는 모든 사회적 체제]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아나키스트는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고 있었던 [무정부주의자]보다 그 범위가 훨씬 더 넓고 큰 것이다.
따라서 무정부주의자는 아나키스트의 단지 한 부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아나키스트를 [무정부주의자]보다는 [모든 사회적 시스템에 저항하는 무체제주의자]로 번역하는 것이 아나키즘의 의미를 좀 더 충실하게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나키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나키스트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나키스트는 그들이 살아가던 시대와 화합하지 못했던, 그들의 사회와 화합할 수 없었던, 국가를 포함하여 그들 당대에 존재하던 모든 사회적 시스템과 화합을 거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시대의 이방인'으로 살아갔던,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이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체제와 맞서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나키스트이기에 그들은 정치체제와도 화합할 수 없었다.
정치적인 '우익'의 관점에서는, 시대에 따라서는, 그들이 '좌익'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물론 젊은 시절에는 '순수 아나키스트'였다가 나중에는 '좌익 정치가' 또는 '좌익 사회 운동가'로 변절한 경우도 있다.
누구라고 대놓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후일에 하나의 '아이콘'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그런 류의 인물도 있다.
그런 이들로 인해 '아나키스트가 곧 무정부주의자'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모든 변절은 '자기변명'과 '타협'이 '세월의 변성 작용'을 거치면서 생성된 결과물이지만
막상 '변절자' 그 자신은,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은, 그것을 '전이' 또는 '변이' 정도로만 여긴다는 것이다.
타인의 변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강한 비판을 일삼는 그들에게 자기 합리화는 자신의 변절에 대해 '자기 망각'을 일으키는 주술의 묘약인 셈이다.
유토피아가 아닌 다음에는, 아나키스트가 맞서 싸워야 할 체제와 세력은 어디에나 늘려있고, 언제나 산재해 있기 마련이기에
진정한 아나키스트는 언제 어디에서나 그것들과 대립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들은 기존 사회적 시스템에 불만을 가진 '사회적 불안 요인'이 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