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아나키스트의 근본적인 의미를 다루려거나 "아나키스트란 이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는 것을 애써 주지 시키려고 쓴 것이 아니다.
아나키즘에서 카프카의 흔적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카프카의 작품과 그를 좀 더 제대로 이해하려는 것이 이 글의 주된 목적이다.
"카프카도 그랬었다. 밤의 고독 속에서 외롭게 글을 쓴 카프카는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아나키스트와 같은 삶을 살았다."
카프카는 검은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카프카다운' 삶을 살았었다.
카프카의 글을 제대로 읽은 이라면 "카프카는 글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체제에 반항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른 나이에 병으로 죽으면서, 자신의 흔적과 글을 세상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세상과 화합하지 않기 위해, "내가 남긴 글들을 모두 태워달라."라고 그의 친구에게 부탁하였다.
시대와 화합하지 못한 삶을 살았으니, 카프카는, 죽어서조차 세상과 화합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카프카의 죽음을 '세상을 향한 카프카의 마지막 반항'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카프카의 부탁을 받은 친구는, 그의 앞에서는 당장은 수긍을 하였겠지만, 카프카가 죽은 후에 그의 글들을 태워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였을 것이다.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카프카의 '마지막 부탁'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프카가 남긴 문장들은 태워지기는 커녕, 카프카가 죽은 후에 작품으로 발표되어서 '작가 카프카'라는 별을 탄생시켰다.
삶이라는 고개를 넘어가다 보면 알게 된다. 어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을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어쩌면 이 지켜지지 않은 부탁으로 인해 카프카는 비자의적으로 세상과 화합하게 된 것일 수 있다.
세상과의 화합은 자의적이든 비자의적이든 "그것을 이루기만 하면 될 뿐이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긴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과의 화합을 위해 적당히 타협해 가는 과정이기에, 그들의 말을 탓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카프카의 비자의적인 화합은, 그와 그의 작품들 또한 세상과 화합한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한 것일까."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카프카의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저항과 불화합이 지금의 세상에서도 유효한 것일까."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살아서 이방인이었던 카프카는 그의 글을 통해서, 지금의 세상에서도 여전히 저항의 날갯짓을 휘젓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