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인 아나키스트 카프카

4. 정적인 아나키스트 카프카


카프카를 아나키스트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가 지상에 존재했던 기간(1883.7.3.-1924.6.3.) 동안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카프카가 살았던 시대를 숫자를 빌어 나타내면 19세기 끝 무렵과 20세기 첫 무렵이다.

1883년에 태어난 카프카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그의 일생 대부분을 보냈다.


프라하는 그가 태어난 곳이자 성장하고, 폐결핵으로 1924년에 빈 교외의 키어링 요양원에서 사망하기 전까지, 밤마다 어둠 속에서 고뇌하며 글을 쓴 곳이다.


프라하라는 도시는 지금에야 아름다운 관광지이지만 당시에는 결코 그렇지 못했다.

프라하 또한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유럽의 여느 도시였다.


당시의 프라하는 정치적으로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해 있었으며 독일인과 체코인 외에도 카프카 일가와 같은 유대인들이 다양한 갈등과 조화를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국가적으로는 제국주의가 확장되고 있던 세계적 상황에 맞물려 오스트리아 제국 또한 제국주의적 팽창을 꿈꾸고 있었다.

이에 교육은 군국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의무교육을 받아야 했다.


여러 민족들이 뒤엉켜 살아가고 있던 유럽은 민족주의의 발현으로 인해 사회적 분열이 극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심지어 같은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회주의자나 노동자 계층에서조차도 그들의 민족을 기반으로 분열되었다.


민족주의는 다른 민족을 향한 공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19세기와 20세기에 불어닥친 유럽의 민족주의는 반유태주의 바람을 일으켜 유태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프라하의 경우에는 주된 민족이었던 체코인과 독일인으로 크게 나뉘어 그들 나름의 사회적 계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의 결합은 카프카를 세계 1차 대전이라는 참혹한 전쟁의 목격자로 만들었다.


이런 시기에 프란츠 카프카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갈등과 고뇌 속에서 글을 썼다.

카프카가 살아온 시대적 상황은 그의 글 속에 그대로 담겼다.

카프카의 글 속에 나타난 체계화된 관료적 수직성은 그가 살아가던 시대의 제국주의의 경직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극단적인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는 다양한 형태의 아나키스트를 탄생시키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시대를 살아가게 된다면, 다른 의식을 가진 사람들처럼, 아나키스트가 될지도 모른다.

만약 의식적으로 아나키스트가 되지 않는다면, 고독한 몽상가가 되어 카프카와 같이 무의식적으로 아나키스트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나키스트는 '아나키즘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를 말하는 것이기에 글쓰기와 몽상하기를 통해 '정적으로 행동'하는 이들 또한 아나키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프카는 동적인 아나키스트가 아니라 '정적인 아나키스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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