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또는 검은 까마귀

<반항과 파괴 그리고 재창조의 미학, 카프카와 랭보> 중에서

제1화:

카프카 또는 검은 까마귀


혹자는 체코(the Czech Republic)를 ‘거리를 돌아다니는 비둘기만큼 들판을 날아다니는 까마귀가 흔한 곳’이라고 말을 한다.

“흔하다”는 것이 단지 “숫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란 것을 알긴 하지만 여러 차례 하늘 길과 땅 길을 통해 찾았었던 프라하에서, 까마귀의 기억을 뒤적여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프라하가, 까마귀가 흔한 도시였던가.”

"프라하에서, 아니 체코에서, 까마귀를 만나본 적이 있었던가?"


하긴 두 발로 돌아다니며 느끼던 프라하라는 도시의 기억과 자동차 안에 갇혀 바라보던 체코의 들판 기억이 한데 뒤섞여 있으니 그럴 수밖에.


기억 찾기는 체코의 들판을 뒤진다. 여러 해가 지난 오래 전, 독일과 국경을 가까이에 하고 있는 폴란드의 브로츠와프(Wroclaw) 시에서 브로츠와프 대학과 함께 주관했던 2박 3일의 학술행사를 마치고, 오후가 늦어서야 체코의 프라하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었다.


그날 오후 내내 그리고 밤이 내리는 시간까지 차창 너머를 장식하던 체코의 낮은 들판 구릉에서는 누렇게 익어가는 홉이 바람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고 있었다. 고흐의 밀밭 같은 그 들판의 풍경에 선잠을 깜빡거리다가, 무언가의 ‘춤질’ 같은 가물가물한 움직임을 본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현상으로는 존재했던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선명한 형체를 빌어 더듬어 내기는 어렵기만 하다.


갈색 빛의 크레마가 뽀얗게 덮인 갓 내린 커피의 향이 열린 창을 넘어 그곳,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가는 체코의 들판으로 향한다.


“아, 다시 찾아오니 알 것 같다. 그것은 까마귀였다.”


금세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그때는 멀기만 하였지만 그것은 까마귀가 무리 지어 일으킨 검은 군무였던 것이다. 이제 까마귀는 때 지난 체코 들판의 검은 점박이가 된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7.3-1924.6.3), 그의 패밀리 네임인 카프카(Kafka)는 체코어로는 카프카(Kavka), 곧 ‘검은 까마귀’라는 뜻을 갖고 있다. 체코, 카프카 그리고 검은 까마귀, 이 개체들 사이엔 풀리지 않을 인연의 끈이 단단하게 매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그 들판에 무리 지어 떠다니던 까마귀 반점이란 게 혹시 꿈의 잔재는 아니었을까.”

“그날 까마귀의 비행은 제 몸 숨길 곳을 찾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카프카의 작품에 등장하는 카프카 자신일 수도 있는 그들과, 체코의 들판에서 만났던 까마귀의 연관 관계에서 뭔가 짙은 인연의 냄새가 풍겨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때는 하나의 현상이었지만 뒤 늦어진 기억 속을 날아다니는 의 검은 까마귀와, 존재하긴 했지만 자신의 실존을 찾아 헤매었던 카프카는, 체코의 바람 부는 넓은 들판에서 제 몸 쉬어갈 곳을 찾지 못한 채 하염없이 날아다녀야만 하는, 어쩌면 찾으려는 노력이 삶에 과부하를 걸어 버린, 그레서 불안정해진 상태로 그날 나와 함께 프라하를 찾았었던 것일 수 있다.


한두 가지의 자잘한 사건으로 인해 밤이 늦어서야 프라하의 숙소에 도착하였다. 긴 이동에 여행 가방만큼이나 무거워진 몸을 일으키다가 검은 어둠을 겨우 밝히고 있던 길 건너의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바스락거리는 작은 움직임을 본 것 같았다.


“바람이 불었던가.”


의심 많은 지식은 그곳에서 바람의 흔적을 찾아내려 하지만 그곳에는 몸을 웅크린 검은 점박이 덩이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때로는 늦게 알게 되는 것이 제대로 아는 것일 수 있다. 그 점박이는, 그날 8시간이 넘도록 시달렸던 찻길을 따라 날다가 날갯짓이 위축되어 버린 검은 까마귀 자체이기도, 일상에 지쳐 돌아온 검은 슈트의 카프카이기도 했다. 그날, 그 긴 시간 동안, 검은 까마귀와 검은 카프카는 나의 옆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기억 장소에는 실체가 희미한 현상만이 지식이란 이름표를 달아 남겨지는 것 같다. 또한 지혜란 것은 그 지식에서 건져낸 묵은 현상과 가물가물 희미해졌지만 실재했었다고 믿어지는 언젠가의 그것을 실마리로, 채색과 변형을 거쳐 새롭게 구성해 낸 현재의 환영 같은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지나간 것의 실체와 본질은 언제나 날 흐린 날의 그림자와 같은 것일 뿐이다.


나에게 있어 카프카는 그런 본질인 것일까. 그날의 들판을 날아다니던, 그래서 아직 나를 쫓아오고 있는 까마귀의 검은 현상인 것일까. 내가 카프카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를 좇고 있는 것은, 그에게서 반항과 재창조라는 아름다운 지혜의 향기를 맡기 때문일까.


<반항과 파괴 그리고 재창조의 미학, 카프카와 랭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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