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는 자신이 죽고 나면 남아있는 자신의 글들을 모두 불태워달라는 부탁을 친구인 막스 브로트에게 했었지만 막스 브로트는 그 부탁을 실행하는 대신에 그것들을 정리하고 편집하여 책으로 출간하였다. 훗날 유명한 일화가 되어 문학을 사랑하는 대중의 입에 회자되고 있는 이 일화를 통해 카프카의 심리상태를 더듬어볼 수 있게 된다.
이 일화에서 첫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카프카는 언제라도 자신이 쓴 글들을 스스로가 불태워 버릴 수 있었겠지만 끝내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막스 브로트에 따르면, 카프카가 자신이 죽고 나면 자신이 쓴 글들을 모두 불태워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 자리에서 거절의사를 분명하게 밝혔지만, 그에 대해 카프카는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카프카의 죽음은 알베르 카뮈의 죽음과 같이 전혀 예기치 못한 한 순간의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러 해를 두고 계속적으로 깊어져 간 그의 지병 때문이었다. 따라서 삶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카프카가 진정으로 자신의 글들을 없애버리고 싶었다면, 스스로의 의지로는 더 이상 무엇인가를 행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전이나 세상을 떠나기 바로 직전에라도 자신의 손으로 그 글들을 직접 불태워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카프카는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이 죽은 후에 자신이 쓴 원고들과 편지들, 일기들을 모두 불태워달라고 부탁했고, 막스 브로트의 거절 의사에도 불구하고 그를 자신의 문학적 유언집행인으로까지 지정하였다.
이 일화에서 문학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카프카의 심리에 관한 것이다.
“카프카는 대체 왜 그랬을까. 자신의 손으로는 자마 자신이 쓴 글들을 불태울 수 없었던 것일까.”
“혹시 카프카는, 자신의 글들이 불태워지는 것을,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카프카의 정신 속에서는 흔적도 없이 태워버리고 싶다는 내적 자아와 세상에 드러내고 싶다는 외적 자아가 충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카프카는 자신의 손으로는 불태워버릴 수 없을 만큼 자신이 쓴 글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가졌었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카프카가 ‘자신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 한 말을 토대로 ‘카프카와 그가 쓴 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오직 내가 쓴 글로 만들어져 있으며, 내가 쓴 글이 바로 나이고 내가 쓴 글 외에는 다른 무엇도 아니며,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없다.”
카프카는 그의 영혼의 친구이자 문학적 동지인 막스 브로트라면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릴 것이고, 그것이 자신의 글들을 태워 없애는 것이건 세상에 내놓는 것이건, 언젠가는 분명 자신을 대신해서 그것을 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어쨌든 카프카가 남긴 이 부탁으로 인해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글들을 손에 넣게 되었지만 그 글들의 운명을 결정해야하는 커다란 부담감 또한 안게 되었다. 카프카가 남긴 글들을 처리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불태워 달라는 카프카의 부탁을 곧이곧대로 실행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되었더라면 카프카의 글들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카프카가 사망할 당시까지, 그리고 그 뒤로도 한참 동안은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보다 더 잘 알려진 작가였다. 또한 카프카가 사망할 당시 막스 브로트는 갓 마흔이 넘어 한창 활동할 시기였기에 ‘죽은 친구를 위해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스 브로트의 결정은 남달랐다. 다른 말로 하면 카프카의 결정이 옳았다.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글들을 세상에 알려야 하는 ‘문학적 부담’을 스스로 짊어졌다. 그것은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 문학의 가치를 일찍부터 알아 보았기에, 그 글들에 카프카만큼이나 강한 애착을 가졌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카프카에게는 ‘글을 쓴다는 것은 곧 구도의 행위’였으며 ‘자신이 쓴 글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기에, 자신의 글을 불태운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불태워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쓴 글들을, 자신의 손에 의해서건 타인의 손에 의해서이건, 없애버릴 수 없었으며 그것은 카프카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누구도 행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금기사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죽은 후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태워진 글들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지만 생전에 자신이 행했던 구도의 행위는 남겨진다고 믿었던 것 같다. 카프카가 그의 글들을 모두 불태우라고 한 것은, 시간이 지난 먼 후일에 ‘혹시라도’ 그를 더듬어 찾아오는 누군가가 있게 된다면(그때까지 카프카는, 자신을 유명 작가로 세상이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작가로서의 카프카가 아니라 문학적 구도자로서의 카프카로 기억되기를 원했기 때문일 수 있다. 아마도 카프카는 문학 작가로서는 세상에 드러나고 싶지 않는, ‘영원한 문학적 은둔자’가 되기를 원했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인한 것이건, 어떤 과정을 통해서이건, 우리가 알고 있는 카프카의 글 대부분은 그가 죽은 후에 막스 브로트의 손을 빌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고 검은 잉크가 박힌 ‘작가 카프카’의 종이책이 독자들의 손에 잡히게 되었다. 이것이 카프카가 생전에 원했던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막스 브로트가 짊어져야만 했던 ‘문학적 부담’과 그가 내려야만 했던 ‘문학적 결정’에 카프카의 글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활자로 인쇄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카프카의 글들은 불안정한 현실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부조리한 상황에 빠져 버둥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망망한 거친 바다를 항해하듯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찬란한 불빛을 뿜어내는 등댓불이 되어 주고 있다.
by Dr. Franz KO(고일석)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6585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