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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주인공, K

카프카의 주인공, K

카프카가 쓴 3편의 장편 소설 <성>(城, 독일어 제목: Das Schloss, 영문 제목: The Castle, 1922년 작, 1926년 출판)과 <소송·심판>(독일어 제목: Der Prozess, 영문 제목: The Trial, 1914년 작, 1925년 출판), 그리고 <아메리카 또는 실종자>(독일어 제목: Amerika or Der Verschollene, 영문 제목: Amerika or The Man Who Disappeared, 1912년 작, 1927년 출판)에는 주인공이 K 또는 K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성>의 주인공은 K이고 <소송·심판>의 주인공 또한 K(Josef K)이며 <실종자>의 주인공인 카알 로스만(Karl Roßmann)의 이름은 K로 시작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눈길을 끄는 점은 이 소설들의 작가인 카프카(Kafka)의 이름 또한 K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실제로도 많은 문헌들에서는 이 세 작품들의 주인공 이름이 카프카라는 작가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얘길 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프란츠 카프카의 이름은 ‘프란츠(Franz)'이며 일가의 이름(Family name)이라고 할 수 있는 성(姓)이 카프카이기 때문에 이 세 작품들의 주인공인 K와 카프카의 이름 프란츠를 직접적으로 연결 짓는 것을 이성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살아 생전 그의 지인들로부터 ’프란츠‘라는 그의 이름으로 불렸으며 친분 관계가 없는 사름들로부터는 ’Dr. Kafka' 또는 ‘Kafka', 우리식으로 번역하자면 ‘카프카 선생님(박사님)’ 또는 ‘카프카씨’로 불렸을 것이다.


이와 같이 카프카의 이름을 K와 연관시키려는 시도에 있어서는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못한 일부 연구자들의 번역상의 혼동을 찾아볼 수 있게 된다.

물론 소송의 주인공인 K는 '요제프 K'(Josef K)이기 때문에 카프카와 같이 아름이 K가 아니라 성이 K로 시작한다고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성을 앞자리만으로 부른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기에 요제프 K에서 K는, 중간 이름(middle name)의 약자이며 그를 요제프라는 동일한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과 구분하기 위해 K라는 중간 이름의 약자를 붙여 불렀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일가의 성은 편의상 생략되었을 것이라고 또한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아무튼 이에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의 저서인 <카프카의 삶과 사상, 그리고 남겨진 것들>에서 한 부분을 발췌하여 소개한다.


저자의 저서 <카프카의 삶과 사상, 그리고 남겨진 것들>에서 발췌


다음으로 생각해 볼 점은 구스타브 야누스가 카프카를 지칭할 때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가 하는 것이다. 카프카의 절친이었던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를 ‘프란츠 카프카’라는 전체 이름으로 부르거나 ‘프란츠’라는 이름만으로 부르고 있지만, 구스타브 야누흐는 카프카를 ‘카프카’라고 부르거나 ‘카프카 박사’(닥터 카프카, 카프카가 당시 받았던 닥터라는 학위는 ’법학 박사‘를 말하는 것이며 이는 현재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박사‘와는 차이가 있다)라고 부르고 있다.


구스타브 야누흐가 카프카를 그렇게 부른 것은, 친한 사이에서는 ’길동아‘ 또는 ’홍길동‘과 같이 그 사람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부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이에서는 ’홍 선생님‘이라든가 ’홍 박사님‘, 또는 ’미스터 홍‘, ’홍씨‘와 같이 주로 가족의 ’성‘으로 그 사람을 부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구스타브 야누흐는 카프카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에 카프카를 부를 때 막스 브로트와는 달리 존칭을 붙여서 사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구스타브 야누흐가 그의 문장에서 사용한 ’Dr. Kafka‘는 ’카프카 박사님‘으로, 또한 그냥 ’Kafka'는 ‘카프카 선생님’으로 번역하는 것이 한국적인 문화에서는 옳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스타브 야누흐와 관련된 한글 문헌들 대부분에서는 ‘프란츠 카프카’ 대신에 ’카프카‘라는 일가의 성(Family Name)으로만 칭하고 있는데 이는 번역상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이다.


그들이 저술한 책의 제목을 살펴보면, 카프카의 호칭에 있어서의 막스 브로트와 구스타브 야누흐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막스 브로트가 저술한 카프카에 대한 책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 ⟪프란츠 카프카의 사상과 가르침⟫

• ⟪프란츠 카프카의 절망과 구원⟫

• ⟪프란츠 카프카의 생애⟫

• ⟪프란츠 카프카에 대해서⟫


이와 같이 막스 브로트는 책의 제목에서도 ‘프란츠’란 카프카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친한 친구이자 문학적 동지로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구스타브 야누흐가 저술한 책의 제목은 다음과 같이 막스 브로트의 책들에서와는 다르다.

다음과 같이 막스 브로트와는 달리 구스타브 야누흐는 ‘카프카’라는, 일가의 성만을 책의 제목에서 사용하고 있다.

• ⟪카프카와의 대화⟫



이와 같이 카프카가 그의 지인들 사이에서는 프란츠란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라는 점으로만 본다면 세 작품의 주인공인 K와 카프카의 이름을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작품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러한 시도가 전혀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이들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주인공들이 ‘사회로부터 소외된 인간’이며 그들은 작가인 카프카의 처지가 투영된 인물들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을 살펴보자.



인정받는 중견 은행원인 요제프 K는 서른 번째 생일날 아침,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체포’되었음을 통지받는다. 하지만 무슨 죄로 체포되었는지 그들은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들로부터 전달받은 유일한 정보는, K를 대상으로 한 '고소'가 제기되어 '형사소송'이 진행될 것이라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소송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는 언급되지 않고, K는 그것에 대해 끝까지 알지 못한다. 어떤 소송인지를 알아보려고 노력해 보지만, 어디에서도 답을 듣지 못한다. 또한 무슨 소송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변호사를 만나는 등 소송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해 보지만 그 역시 시원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다.


다만 법률체계가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하게 되면 설령 죄가 없다고 하더라도 무죄로 인정받기는 어렵다는, 이해되지 않는 사실만을 희미하게 인지하게 될 뿐이다. K는 소송을 당한 당사자이지만, 그 소송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벗어나려 애를 쓴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체포된 이후에도 K는, 아무런 구금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단지 그가 피소되었다는 사실만을 집행자들이 주지시킬 뿐이다. 그는 그가 무슨 죄로 피소되었는지, 자신을 심판하려는 법원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있기에 K는 직장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며 산만한 생각을 이어가고 그가 마주하는 상황에서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가 어떤 일로 소송을 당한 것인지, 소송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길이 없는 상태에서 1년이 지난 어느 날, 요제프 K는 운명의 순간을 맞는다. (카프카의 <소송>에서)



여기에서도 독자들은 <변신>의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가 빠졌던 부조리한 상황을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된다. 카프카의 작품 도처에는 부조리의 텍스트가 늘려있다. 그래서 카프카의 독자들은 카프카의 글을 읽으면서 부조리의 늪에 빠지고 헤쳐 나오기를 반복하게 된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카프카의 외적 자아, 즉 카프카의 페르소나인 것처럼 K 또한 카프카의 또 다른 페르소나라는 것을, 카프카의 문학은 ‘카프카가 자신의 실존을 찾아가는 구도의 행위’라는 것을, 스스로를 카프카 마니아라고 여기는 이라면 이쯤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by Dr. Franz KO(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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