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질 들뢰즈가 카프카를 자주 인용한 것은 그의 정치철학과 관련되어 있다.
정치에 대한 들뢰즈의 철학은 ‘정치: 미시파시즘과 소수 되기’라고 압축하여 말할 수 있다.
들뢰즈는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표현하였으며 카프카의 작품에서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적인 카프카’를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카프카를 아나키스트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저자의 또 다른 저서인 <카프카의 삶과 사상 그리고 남겨진 것들>을 읽어보길 바란다.
들뢰즈는 자신의 작업이 민중 계층의 자기 해방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의 철학적 콤비이자 공산주의 활동가로 활동했던 펠릭스 가타리를 만나고 나서 그의 마르크스주의적인 성향이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들뢰즈는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자 하였다.
들뢰즈는 분명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그것은 그의 사상적 차원에서의 주제였을 뿐 현실 정치에는 비교적 관심을 덜 가졌다.
사실 들뢰즈를 논함에 있어 그의 정치 철학은 그의 다른 업적들에 가리어져 그리 큰 주목을 받을만한 주제는 아니었다.
또한 "들뢰즈 마르크스주의"라는 표현이 사용될 만큼 들뢰즈의 철학과 마르크시즘을 연결하려는 연구는 꾸준하게 있어왔지만, 들뢰즈 자신이 정치에 대해 그리 많은 문장을 남기지 않았기에 그 실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하지만 <카프카: 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Kafka: Toward a Minor Literature, 1975)와 <천 개의 고원>(A Thousand Plateaus, 1987)과 같이 펠릭스 가타리와 공동으로 저술한 저서에서는 들뢰즈의 정치 철학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들뢰즈가 파악한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본주의가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화’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 들뢰즈는 아나키스트 카프카의 작품에서 소수자의 문학을 발견한다.
그것은 카프카가 체코에 사는 독일계 유태인으로서 독일어로 일을 하고 독일어로 글을 쓴, 그러면서도 주류의 독일인들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한 소수자적 정체성을 지닌 작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수란 숫자적인 많고 적음에 대한 것이 아니라. 힘의 문제에 있어서의 소수를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들뢰즈와 카프카를 연결시킴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문맥은 ‘소수자’라는 것의 개념이다.
물론, 이와 같은 관점에서 접근한 '카프카: 소수'라는 개념은 '들뢰즈의 소수'와는 차이점을 갖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하기로 한다.
이제 들뢰즈가 말하는 소수자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볼 시간이다.
들뢰즈에 의하면 자본주의(資本主義, capitalism)는 전체주의(全體主義, totalitarianism)와 전혀 다른 사회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체제이다. 들뢰즈가 말하는 ‘소수’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전체주의, 파시즘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 전체주의: 전체주의는 개인의 모든 활동은 민족과 국가와 같은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이념을 토대로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고 억압하는 사상이며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이 가장 대표적인 전체주의이다.
• 자본주의: 자본주의는 생산 수단을 자본으로서 소유한 자본가가 이윤 획득을 위하여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 경제 체제를 말한다.
• 파시즘: 파시즘(fascism)은 제일 차 세계 대전 후에 나타난 극단적인 전체주의적ㆍ배외적 정치 이념. 또는 그 이념을 따르는 지배 체제를 말한다. 파시즘은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폭력적인 방법에 의한 일당 독재를 주장하여 지배자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한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철저한 국수주의ㆍ군국주의를 지향하여 민족 지상주의, 반공을 내세워 침략 정책을 주장한다.(표준국어사전)
들뢰즈는 전체주의를 사회의 속박으로부터 탈주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려는 코드화의 성격을 가진 시스템으로 보았으며, 자본주의는 이것으로부터 탈주하려는 욕망을 표출시키는 탈코드화의 성격을 가진 시스템으로 보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탈주에 대한 욕망은 상품성과 소비에 의해 재코드화되어 결국에는 사회 시스템에 일원화됨으로써 발현 가능성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들뢰즈에 따르면 이렇게 탈주에 대한 욕망이 일원화되어 다른 형태로 코드화될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이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자체가 바로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이라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한 재코드화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소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들뢰즈가 말하는 소수란, 숫적으로 주류를 이루지 못한 영역에 속한 사람들 또는 여성과 동성애자와 같이 ‘사회통념상의 약자’ 또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아니다.
들뢰즈의 소수란 스스로의 코드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영역에 속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즉, 그 사회에 있기는 하지만 그 사회 속에서 스스로를 코드화시키지는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들뢰즈의 소수’인 것이다.
들뢰즈의 이 개념은 카프카의 ‘존재한다는 것은 그곳에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곳에 속한다는 것’이라는 말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그래서 들뢰즈의 소수를 카프카의 표현을 빌어 말한다면 ‘소수(Minor)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 어딘가에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를 코드화시키지 못해 소수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들뢰즈와 카프카는 철학자와 문학작가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사상에서는 상당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들뢰즈가 카프카와 카프카의 작품들을 그의 강연과 저작물에서 종종 소환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by Dr. Franz KO(고일석)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6585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