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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관점에서 바라본 카프카의 문학 -1

들뢰즈의 관점에서 바라본 카프카의 문학 -1

카프카와 들뢰즈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카프카의 문학과 들뢰즈의 철학 사이에서는 교집합을 만들어 내고 있는 상당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은 접근하는 방법이나 관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카프카와 들뢰즈의 가장 큰 차이점은, 카프카는 문제를 던지기만 할 뿐 그것의 해결방법이나 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반면에 들뢰즈는 자신이 던진 문제에 대해 ‘들뢰즈 식’의 풀이법을 제시하거나 실마리를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들뢰즈는 다수-소수의 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하는지, 몇몇 단서들을 내어놓았다. 이러한 들뢰즈의 단서들은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계승되어 ‘자율주의’ 또는 ‘들뢰즈-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의 사상으로 더욱 발전되었다.


들뢰즈는, 다수의 코드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연대, 즉 ‘소수 되기’를 통하여 끊임없이 재코드화를 추구함으로써, 자본주의의 파시스트화에 대항해야 한다는 해법을 ‘다수-소수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였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되기’란 영어로는 ‘becoming’으로 ‘다른 삶으로, 영역의 바깥으로 이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들뢰즈가 제시한 다수-소수 문제에 대한 해법에는 ‘되기’라는 것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영토화’, ‘탈영토화’, ‘탈주’, ‘배치’ 등과 같이 들뢰즈가 사용한 몇 가지 용어들에 대한 이해 또한 필요하게 된다.


들뢰즈는 현대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중에 한 사람이니만큼 그의 철학은 깊고 복잡하며 또한 난해하기까지 해서 단지 몇 줄의 문장만으로 그것들을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가 프랑스인인 들뢰즈가 자신의 철학을 기술한 문장들은, 당연히 프랑스어로 쓰였기 때문에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또는 영어를 거쳐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표현의 차이’와 같은 번역상의 문제가 어느 정도는 발생하고 있음을 먼저 인지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이와 관련된 부분은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공저 <천 개의 고원>(1980)을 통해 접할 수 있으며 그것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계와 개체, 기계의 속성

‘배치’는 들뢰즈와 카타리의 저서 <천 개의 고원>을 떠받치고 있는 개념적인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배치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배치의 요소인 ‘기계’라는 개념에 익숙해져야 한다.


들뢰즈는 살아있는 것을 포함한 모든 개체(entity)를 ‘기계’라고 정의하고 있다. 들뢰즈가 개체들을 기계라고 보는 것은, 하나의 개체는 다른 것(또는 다른 것들)과 접속함으로써 그 개체가 기지고 있는 속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속성이 달라진다는 것은 속성 자체에 변화가 생기거나 어떤 속성이 가진 값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속성이란 개체가 현재 가지고 있는(또는 소유하고 있는) 어떤 값을 말하며 하나의 개체는 여러 가지의 속성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 개체는 또한 변하지 않는 유일하고 단일한 속성들만으로 이루어진 단독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서 다른 개체들과의 연결을 통해 속성의 변화를 갖게 된다.

대부분의 속성이 가변적이긴 하지만 개체에 따라서 어떤 속성은, 오직 그 개체만이 가진 것일 수 있으며 이때 그 속성은 그 개체를 특정 지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될 수 있다.



배치란 무엇인가

이 기계들은 서로 간의 접속을 통해 선을 형성하고, 나아가 선과 선이 만나면서 면을 형성한다. 이때 면을 형성한 이 장(場)을 들뢰즈는 ‘배치’라고 말하고 있다. 배치는 소수-다수 문제에 대한 들뢰즈 철학의 전략적인 거점이라고 할 수 있다.


배치에는 개체들의 배치, 즉 기계들의 배치인 ‘기계적 배치’ 외에도 ‘언표적 배치’가 있다. 기계적 배치와 언표적 배치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축구경기를 예로 들어 보자.


축구경기는 축구장이라는 시설에서 선수들과 심판, 관중들이 모여 축구공을 수단으로 승부를 판가름하는 스포츠이다. 여기에서 축구장과 선수, 관중, 심판, 공과 같은 개체들 각각은 기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축구경기 또한 하나의 개체이며, 이는 다른 개체들의 상위에 있는 ‘상위 개체’ 즉 ‘상위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축구경기를 구성하고 있는 기계들의 배치가 바로 기계적 배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언표적 배치란 무엇일까. 축구경기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기계적 배치 이외에도 경기 규칙이 배치되어야만 하는데 이때 경기 규칙의 배치를 언표적 배치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멀리에서 바라보게 되면 기계적 배치와 언표적 배치가 조화롭게 합쳐져서 축구경기가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는 조화를 이루어야만 하는 배치들이 셀 수 없을 만큼이나 늘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세상은 그 배치들을 통해 돌아가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장인 것이다.


by Dr. Franz KO(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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