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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배치와 차원

들뢰즈의 배치와 차원


사실 지금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철학적’이라거나 ‘수학적’이라는 조금은 거창해 보일 수도 있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차원’(Dimension, 次元)이라는, 물리적이기도 하면서 다소 형이상학적기기도 한 개념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차원이라는 개념을 들뢰즈가 말한 ‘배치’의 문제에 대입하게 되면 세상의 구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점이다. 점은 세상을 구성하는 시작이자 끝이다.

개체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개체를 미분하게 되면 그것이 ‘0’이 되기 전 마지막 값은 하나의 점이다. 점은 한 개체의 마지막 수렴 값이다. 점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게 되면 ‘무위’(無爲)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무위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자 현상을 초월해 상주 불변하는 상태’이기도 하다. 점은 차원의 씨앗이지만 점만으로는 차원을 생성하지 못한다.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기계들이 서로간의 접속을 통해 선을 형성’한다면 ‘기계과 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기계는 곧 개체이기에 ‘개체가 기계이며 또한 점’인 것이다.

점과 점이 만나면 ‘선’이라고 하는 1차원의 세상을 이루게 되며 1차원은 가장 낮은 단계이자 첫 단계의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선과 선이 만나는 곳에서 ‘면’이라는 2차원의 세상이 나타난다. 면을 이룬 세상은 비로소 인간의 인식능력 가까이로 좀 더 다가선다.


다시 이 면은 하나 이상의 다른 면과 만나 ‘공간’이라는 3차원의 세상을 이룬다. 3차원에 이르러서야 차원에 대한 인간의 인식능력은 현실이 된다. 우리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 세상은 3차원이며, 인간이 물리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모든 개체들 또한 오직 이 3차원의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1차원의 세상과 2차원의 세상은 오직 거시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어서 인간의 미시적인 능력은 그것들을 결코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것들은 존재하긴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3차원에 존재하지 않는 개체에 대해서도 인간은, 그 개체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더라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논리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때 논리적 딜레마에 빠진 인간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탈출구(last exit)는 ‘좀 더 철학적이 되는 것’내지는 ‘신전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해한 독자라면 분명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그는 ‘기계들이 서로간의 접속을 통해 선을 만들고 나아가 선과 선이 만나면서 면을 형성하며 이 때 면을 형성한 이 장(場)을 배치’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들뢰즈의 배치는 면이라는 2차원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배치의 개념은 3차원에 닿아있다. 들뢰즈 또한 3차원의 세상을 살았었고 3차원의 세상 속에서 사고하였으니 그의 개념이 3차원적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물질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어떤 것들도, 그것이 논리적이면서 또한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라면 3차원적이지 않은 것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들뢰즈가 말한 것과 같이 ‘면을 이룬 장이 배치’라고 보기보다는 한 차원 더 나아가 ‘공간을 이룬 장이 배치’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것에 있다.


이점에 있어서 들뢰즈가 말한 면은 공간을 포함한 개념이라고 말하며 그것에 관해 나름의 논리들과 문장들을 늘어놓으려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철학이란 학문이, 단어에 유의미한 생각 붙이기, 단어와 단어 사이의 좁은 간격에 호흡 심기, 모호한 문장과 표현을 통해 어떤 것이 느껴지게 만들기, 새롭지 않을 수도 있는 것에 대해 새로운 것이라는 말로 치장하기, 기존의 것에 다른 것을 끌어다 붙이기기와 같이 ‘내 식으로 해석’하기가 난무하는, 그래서 복잡하고 난해하며, 기괴한 것들이 괴변을 양분 삼아 잡초처럼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는,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서 매혹적인 향기를 뿜어내기도 하는, 그래서 결코 인간의 곁을 떠날 일 따위는 없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의 학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by Dr. Franz Ko(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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