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개인이 욕망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순리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사회를 위해서는 개인의 욕망을 좌절시켜야한다고 명령한다.
하지만 들뢰즈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을 부정하고 개인이 가진 욕망을 긍정한다.
인간이 욕망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개인의 욕망은 결코 좌절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욕망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하게 만들고 인간이 새로운 현실(보다 나은 현실)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추진력의 근원이다.
인간은 욕망을 추구함으로 인해 스스로의 재코드화에 나서게 된다.
이런 욕망을 좌절시키라는 사회적인 명령은 개인의 재코드화 자체를 막고 소수를 일원화시키고자 하는 파시즘적인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들뢰즈는 욕망을 통해 자본주의에서의 탈주와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거대한 관습적인 흐름으로 돌아가고 있다. 소비, 상품성, 성공, 자본, 쾌락과 같은 흐름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든다.
그것들의 움직임은 어떤 관(pipe)을 따라 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그 흐름에는 일정한 규칙이나 방향을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이 불규칙성을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 관은 우리의 주변에 무수히 늘려 있으며 자본주의가 탄생한 이래로 축적한 사회적 산물이다.
이 관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부유물들이 함께 흘러가고 있다.
그 부유물들 또한 사회적 산물들이다.
인간의 역사는 주류에 의해 흘러가고 있지만, 그 흐름에는 비주류의 무수한 저항들이 함께 떠다니고 있다.
비주류의 이것들은 결코 주류의 흐름에 녹아들지 않고 날카로운 파편들처럼 부유하고 있다.
즉 사회적 다수와 사회적 소수는 결코 융합되어 하나의 흐름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소수의 이러한 저항들 또한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생성시킨 커다란 흐름 안에 있다.
자본주의는 시스템의 규정을 벗어난 부유물 또는 산물들을 관습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지본주의는 그것들이 시스템의 중심에 다가오지 않도록 하는 척력으로 밀어내며 또한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인력으로 잡아당긴다.
그래서 그것들을 생성한 소수는 척력과 인력의 작용에 의해 ‘경계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수는 사회의 흐름이 흘러가고 있는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관에 갇힌 채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소수의 삶은 경계의 삶인 것이다.
by Dr. Franz Ko(고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