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와 유랑 극단과의 만남

이디시어와 카프카의 문학

카프카와 유랑 극단과의 만남


1911년과 1912년 무렵에 카프카는, 유럽의 중부와 동부 지역을 돌아다니며 이디시어로 공연하는 유대인 유랑극단의 공연을 관람하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뜨겁게 반응하는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된다.

이디시어는 독일인의 언어와 공존하는 부분이 있으면서 슬라브인의 언어가 섞여 있고, 유대인의 언어와도 공존하는 부분이 있는 언어이지만, 혈통적으로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이기에 독일어나 슬라브어의 한 형태라고는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유대인의 언어인 히브리어라고도 할 수 없는, 독특한 특색을 가진 언어이다.


카프카가 그런 이디시어에 반응하게 된 것은, 이디시어에는 오랜 세월 동부 유럽과 중부 유럽을 떠돌아다니며 살아온 유대인들의 자유로운 호흡과 진하고 굴곡진 삶의 여정이 단어와 단어에, 문장과 문장에 배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디시어(Yiddish語)

이디시어는 헤브라이어·아람어와 함께 유대 역사상 가장 중요한 3대 문어 중에 하나로서 헤브라이문자로 표기하는 유대인의 언어이다. 이디시어는 고지 독일어에 히브리어, 슬라브어가 혼합된 언어이며 유럽의 내륙지역인 중부 및 동부 유럽 지방과 그곳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디시어는 독일어 사용 지역에서 9세기경에 처음 나타나(문헌에 등장한 것은 12세기이다) 이후 동부 유럽 전역으로 퍼져가면서 슬라브어와 섞인 것으로 보고 있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디시어를 사용하게 됨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언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주로 동부 유럽에서 세계 각지로 대거 이주한 유대인들을 통해 전 세계로 퍼졌지만 서방국가들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점차 그 나라의 언어로 동화되면서 현재는 이디시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카프카는 동유럽에서 온 유랑극단의 배우들이 뱉어내는 다채롭고 자유로운 표현에 매료되었다. 이로서 카프카는 자신의 글을 채우고 있는 텍스트들과 문체를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되었다.

이디시어를 사용한 그들의 연극은 정통 독일어 연극과는 달랐다. 그들의 말에는 그들과 그들 선조가 걸어온 길에서의 삶의 호흡이 녹아들어 있었다. 카프카가 이들의 공연에서 받은 인상은 그의 문학 전반을 뒤흔들어버릴 정도로 너무나도 강렬했다.


카프카의 귀와 눈에 그들의 연극은 당시 유행하고 있던 서유럽 지향적인 유대인의 연극이나, 그들의 민족성을 강조하면서 고대 유대 국가로의 복귀를 기원하는 내용이 담긴 시오니즘풍의 연극과는 너무 달랐다.

카프카는 글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유랑 극단의 배우들에게 매료되었다. 하지만 카프카는 글을 쓰는 작가이기에 그들 중에 한 사람, 뢰비(Löwy)라는 배우와 프라하에서 함께 보낸 순간에 대해 일기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나를 매일 거의 반시간씩을 기다리는 뢰비가 어제는 이렇게 말을 했다. “며칠 전부터 나는 매일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저 사람들의 창문 쪽을 바라봅니다. 보통 때처럼 약속 시간 전에 내가 이곳에 도착하면 저 불빛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나는 그들이 아직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불이 꺼지고 나면 그 옆방의 불빛이 남습니다. 그것의 의미는 그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이 꺼졌던 방에 다시 불이 켜지면 그들이 양치질을 하는 것이고, 다시 불이 꺼지면 그들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카프카의 일기 중에서)

뢰비의 표현은, 자신이 그들 삶의 한가운데에 서서 직접적인 관찰자로서 체험한 것을 세세하게 서술하는 듯한 느낌마저 갖게 만든다. 이것을 카프카는 자신의 일기장에 옮겨 적으면서, 그 또한 그들의 삶을 오랜 기간 관찰하며 지내온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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