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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글쓰기 언어

카프카 문학의 연구

카프카의 글쓰기 언어


카프카는 태생적으로는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의 언어인 히브리어나 이디시어로 자신의 글을 쓴다는 것은, 작품의 성격 상 그리고 문화적인 여건 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였으며, 자신이 살고 있던 지역의 언어로 글을 쓴다는 것 또한 사회적으로 어려운 일이였다.

카프카가 독일어로 글을 쓴 것은 언어의 궁지에 몰린 그의 문학적인 선택이자 운명이었다. 카프카는 유대인의 언어와 체코인의 언어, 독일인의 언어에 익숙하였지만 그러한 언어의 풍요는 오히려 언어의 빈곤으로 이어졌다.


글쓰기 언어로 독일어를 사용한 카프카의 선택은 독일어 기반의 교육을 받았고 독일어로 쓰인 문학작품들을 탐닉하며 성장한 카프카에게 있어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작가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이상 카프카는, 독일어를 글쓰기 언어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결코 괴테 식으로는, 또는 괴테만큼은 글을 쓸 수 없는 독일어가 자신의 글쓰기 언어가 되어야한다는 사실은 카프카를 적잖은 좌절감에 빠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내려진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당시 카프카 스스로가 찾아낸 문학적 돌파구였고 카프카는 이 돌파구를 통해 자신의 문학을 생성해 내었다.

글쓰기에 있어 카프카가 가졌던 독일어의 빈곤함은 표현이나 어휘의 부족함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다.

카프카의 문학에 있어 그런 것들은 단지 여백으로 남겨지는 공백이기에, 그의 글을 읽게 되는 이들에게는 비어 있는 그 틈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다.

카프카가 생성한 그 여백은 정통적인 독일어로부터의 탈영토화에 이어진 카프카 식의 재영토화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글쓰기 언어를 독일어로 선택한 이상 카프카에게 글쓰기는 오직 자기 혼자만이 치러야하는 대결의 장일 수밖에 없었다. 모국어인 유대인의 언어로부터의 탈영토화는 독일식 교육을 받아야한다는 카프카 아버지의 결정에서 첫 번째 접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 결정을 이룬 것은 아버지이지만 그 결정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은 카프카 자신이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카프카는 유대인 사회에서의 소수자이자 독일인 사회에서의 소수자로서, 어느 곳에도 영토를 마련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곳에나 영토를 마련할 수 있는 다수자 속의 소수자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게 된 것이다.


글에는 그 글을 쓴 이의 정체성이 반영되어 있기 마련이다.

카프카의 정체성은, 그가 인정을 하든지 안하든지, 분명 유대인이라는 민족성에 뿌리가 닿아 있다.

그것은 카프카의 문학이 유대인 언어의 한 종류인 이디시어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카프카의 문학과 이디시어의 관계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에서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언어를 사용할 때에 정서적으로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카프카가 독일어로 글을 썼다는 것은 글쓰기가 그를 고독하게 만들었을 것이란 점이다.


그로 인해 카프카는 글을 쓰면 쓸수록 고립이라는 들판에 난 좁은 오솔길을 혼자서만 걸어가게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카프카의 독자들이 만나게 되는 문학적 아이러니는, 그 고립과 고독이 카프카 문학의 발원지에서 솟아나고 있는 한 줄기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카프카에게 있어 고독과 고립은 자신의 문학에 대한 강력한 에고적인 긍정이었으며 ‘카프카 문학’이라는 새로운 문학의 장을 향해 그가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밤하늘의 별빛이었다.

또한 카프카의 글쓰기는 사회에 대한 문학적 대결이기도 하다.

체코어가 지역적 다수자의 언어이며, 독일어가 사회적 다수자의 언어로 지배하고 있는 당대의 프라하에서 카프카의 완벽한 문학적 글쓰기를 막아서는 것은 그가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카프카가 선택한 것은, 간결하면서도 여백이 넒은 언어를 사용하여 텍스트를 그려 넣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카프카가 완전한 독일어를 구사하는 당대의 문학 작가들과, 독일문학의 최고봉을 상징하는 위대한 작가인 괴테와 문학적으로 대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카프카는 ‘카프카 식의 언어를 이용한 글쓰기’를 창조함으로서 비로소 그들과의 문학적인 대결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카프카와 괴테의 관계를 묘사하자면 ‘추종도 거부도 아니면서, 또한 추종이자 거부이기도 한’ 기묘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들 두 사람에서는 괴테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것처럼 카프카 또한 프라하 카를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다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카프카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것은 그의 아버지의 바람을 따른 것이라는 견해가 있으며 이 견해를 전혀 무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지만, 구조적인 주체를 정하지 않는 카프카의 성향을 고려해 보면 괴테가 법학을 전공했었다는 점이 분명 카프카가 법학을 전공하게 된 것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임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카프카의 문학은 괴테의 문학에 대한 추종도 거부도 아닌 카프카만의 언어를 통한 카프카의 문학이다. 카프카의 언어는 카프카의 작품들에게 벗어날 수 없는 매력을 심어 놓았다.

카프카의 작품을 번역하는 일이 ‘단지 독일문학을 전공’한 학자들의 몫인 것만은 아닌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래서 카프카의 작품들은 카프카라는 작가와 그의 문학 언어를 잘 알고 있는 이에 의해 번역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카프카는 자신만의 문학 언어로 독일어 문학의 영토 안에 자신만의 새로운 영토를 만들어 넣었다.

그 영토는 이질적이면서 모든 문학과 예술, 철학에 접속되어 있다.

그래서 체코는 체코대로, 독일은 독일대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대로 카프카를 그들의 문학 작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며, 비단 문학 작가들뿐만이 아니라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이 카프카를 좇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좇는다’는 것의 의미는 ‘누군가의 말이나 뜻을 따르다’는 것이다.

카프카에 대해서라면 이 좇음을 추종이라고 해도 아무런 어색함이 없을 것이다.

당대의 소수자 문학이었던 카프카의 문학이 현재에 와서 다수자의 문학이 된 것에는 이와 같은 그가 사용한 문학 언어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더듬거리는 듯 어색하면서도 무심한 듯 툭 던져 놓은 것만 같은 그의 텍스트들에서 느껴지는 낯설지만 익숙한 느낌으로 인해 카프카 당대에는 그를 문학적 소수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만들었지만, 결국에는 그를 자신만의 언어를 통해 카프카 문학이라는 영토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문학 작가로 기억되게 만들었다.

이렇듯 카프카의 문학 언어는 ‘카프카 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독일 문학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전후 문학을 대표하는 하인리히 뵐과 같은 문학 작가들의 글쓰기가 여기에 닿아있다고도 할 수 있다.

다수의 언어 속에서 카프카의 독일어는 탈영토화한 독일어였다. 그래서 카프카의 문학은 당대의 사회적 다수인 독일인의 언어로 쓰였지만 소수의 문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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