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에 대한 괴테의 영향

카프카에 대한 괴테의 영향


1911년 12월 25일에 카프카는 일기장에 괴테가 독일어에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어 넣었다.

내용상으로는 독일어에 대한 괴테의 영향에 대한 평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카프카의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도 해서, 카프카 자신과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한 괴테의 영향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쨌든 12월 25일에 카프카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가 자신의 일기에서 표현한 것처럼 ‘근래에 들어’ 더욱 생각이 많아진 것이다.

그 생각들은 카프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것이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카프카 자신의 문학, 즉 카프카 식의 글쓰기에 관한 것이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또한 카프카의 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1911년 말부터 1912년은 카프카의 문학에 있어 중요한 해이다.


몇 가지 주제를 경계 없이 뛰어 다닌 1911년 12월 25일의 일기는 다른 날에 비해 더욱 길었다.

그 중에 괴테에 대한 카프카의 생각을 늘어놓은 문장은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의구심의 토막을 간략한 문장으로 옮겨 적은 것과 같이 하나의 문단으로 정리되어 있다.

괴테는 그의 글이 가진 힘으로 인해 독일어의 발전을 방해하고 있는 것 같다.

산문의 형식은 그동안 그의 영향력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지만, 근래에 들어 그러고 있는 것처럼, 결국에는 그에 대한 동경심이 강해지면서 다시 그에게로 되돌아가게 되고, 심지어는 괴테의 글에서 발견되기는 하지만 괴테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표현들에 대해서도 괴테에 대한 무한한 종속성이 완벽해지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기 위해 본받기도 한다.

(1911년 12월 25일 카프카의 일기 중에서)

우리가 흔히 괴테라는 성으로 부르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 8. 28. - 1832. 3. 22.)는 독일의 작가이자 극작가이며 연극 감독이고 철학자이자 시인이었다.

괴테는 한때 작센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을 지낸 정치인이기도 했으며 당시로서는 아주 드물게 무려 82세까지 생존함으로서 마치 ‘신으로부터 모든 것을 부여 받은 것 같은’ 인물이다.

독일인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인물인 괴테는 근현대 독일 문학을 넘어 서양 철학과 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작가 중에 한 사람으로서, 문인들과 문학 애호가들에게는 셰익스피어나 세르반테스에 버금가는 문학의 신화로 여겨지고 있는 인물이다.


비록 카프카가 체코의 프라하에서 살았었지만 독일어로 교육을 받았고 독일어로 일을 했으며 독일어로 글을 썼기에 그 또한 괴테의 영향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카프카의 글에서처럼 당시의 독일어 작가들은 괴테를 추종하며 그의 문학을 본받으려 했고, 그로 인해 괴테와 괴테의 문학에게 무한하게 종속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글에서 괴테의 흔적이 느껴지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결국 괴테는 막강한 인력으로 문학 작가들을 끌어당기는 문학적 블랙홀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당시의 작가들 대부분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결코 괴테처럼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에서 커다란 상실감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한 현상은 예술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이 르네상스(High Renaissance)를 지나가면서 일부의 예술가들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도나텔로와 같은, 르네상스 예술을 대표하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큰 좌절감을 느꼈는데 그것은 그들의 작품이 결코 그 작품들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느꼈던 좌절감보다 더 큰 좌절감을 카프카 당대의 독일어 작가들 중에 일부는 괴테의 작품에게서 느꼈을 것이다.

그런 좌절감이 15세기 중반에 이르러 일부 화가들에게 마니에리슴(매너리즘)이라는 새로운 화풍을 개척하도록 만든 것처럼 괴테로 인한 카프카의 좌절감은 ‘카프카의 문학’이라는 새로운 문학의 영토를 개척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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