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유랑 극단이 카프카의 문학에 준 영향

유대인 유랑 극단이 카프카의 문학에 준 영향


이디시어를 사용하는 그 극단의 배우들은, 프라하라는 독일어 문화권의 도시에서 공연하기 위해서 온 몸으로 그들의 언어를 전달하기 위해 애를 썼을 것이다. 아마도 유럽의 다른 곳에서의 공연보다 훨씬 더 크면서도 세밀한 동작으로 공연하였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관객들은 그것들을 통해 그들의 공연에 다가 설 수 있었을 것이며 그로서 관객과 배우들은 이디시어라는 언어와 배우들의 동작을 통해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빈곤함이 풍요로움으로 이어지는 것이 있다.

당시 이디시어를 사용하던 유랑극단의 형편이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독일어와 체코어 지역인 프라하에서 그들의 언어는 빈곤했지만 그 빈곤은 무대를 더욱 풍요롭게 하였다.

그들의 경제적 형편은 비참했지만 그들의 무대에는 현란한 수사와 표현들이 풍요롭게 넘쳐났다.


카프카는 유대인이었기에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언어에서는 정통적인 독일 문학에서와 같은 깊이 있는 은유와 화려한 아름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오직 삶과 공연의 본질 자체만이 담겨 있었다.


카프카에게 더욱 감명 깊게 다가온 것은, 떠돌이 생활로 인해 전문적인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못한 그들의 공연에서 순수하면서도 자유로운 삶의 질곡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정제되지 않은 삶의 언어에서는 괴테의 고매한 문장이나 정통적인 언어의 용법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어느 문학 작가의 언어보다 더욱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카프카는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객관적으로는 유랑극단의 공연을 수준 높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당시 프라하의 문예 비평가들은 그들의 연극이 저급하다고 조롱하였다.

사실 유랑극단의 펼친 무대에는 일관성이 없었고 배우들의 표정이나 대사는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방향을 찾아보기 어려운 무대의 전개와 의미를 잃은 것 같은 대사, 표현의 잦은 중첩, 이질적인 것들의 낯선 등장과 이에 따른 단절의 느낌과 같이 당시 그런 류의 유랑극단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점들은 이미 정통 독일어 연극에 익숙해져 있었던 프라하의 비평가들과 관객들을 귀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카프카는 그런 것들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다.

카프카는 그 유랑극단의 공연에서 기존의 예술적 시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수성을 발견하였다.

그는 일관되지 않은 그 공연에서 자신의 작품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을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었다.


그들의 무대는 ‘지독히’라는 단어를 빌어야 할 만큼이나 궁핍하였다.

궁핍은 당시 일반 대중 모두가 겪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였다.

카프카의 사후에 그의 지인들이 ‘카프카는 사회주의자에 가까웠다’고 말하였다는 것을 통해 당시 카프카가 그 유랑극단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지를 추측해 볼 수 있게 된다.


1911년 12월 19일의 일기에 카프카는 그 유랑극단의 연극에 대해 다음과 텍스트를 남겼다.

취사크 부인이 어제 다시 공연에 등장하였다. 그녀의 얼굴은 다른 날보다 더 가늘어 보였고 그녀의 몸은 그런 그녀의 얼굴보다 아름답게 보였다. 그래서 그녀가 첫 번째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녀의 이마에 잡힌 주름이 더욱 눈에 띄었다. 아름답게 윤곽이 잡힌 적당히 강해 보이는 커다란 몸은 그녀의 얼굴과 어울리지 않아서 인어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Siren)과 켄타우로스(Centaur) 같은 반인반수들의 형상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가 화장으로 얼룩덜룩해진 얼굴을 찌푸리며 얼룩이 묻은 군청색의 반팔 블라우스를 입고 내 앞에 섰을 때 나는 마치 무자비한 관객들의 한가운데 있는 어떤 조각을 향해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 같이 느껴졌었다.


그들의 음성과 서툰 표현에서는 대중의 삶을, 형편없는 무대 장치에서는 대중이 살아가고 있는 일반적인 모습을, 매번 바뀌는 문체에서는 대중이기에 가지게 되는 대중성을, 덕지덕지하게 보이는 배우들의 분장에서는 대중의 곤궁한 아름다움을 카프카는 발견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자문하였다.


“괴테를 따라 고매한 문체로 글을 쓰는 것만을 진정한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류의 글쓰기는 문학을 추상적 관념에 머물게 할 뿐이지 않을까.”


이제 카프카는 추상적 관념의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던 문학으로부터 탈주하기 시작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카프카는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카프카의 글쓰기는 예전부터 계속되어 온 것이지만 그날부터의 글쓰기에서는 왠지 다른 무엇이 있었다.

유랑극단과 그들의 언어에서 받은 감명은 카프카의 글쓰기에 녹아들었다.


카프카는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애초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란 것을, 그들은 카프카를 만나기 위해, 카프카의 작가로서의 소명을 일깨우기 위해 그 먼 길을 달려 프라하를 찾아 온 것이라는 것을.


또한 카프카를 따라 여기까지 온 독자들도 알고 있다.

카프카의 성 Kafka는 독일계의 성씨로 서슬라브어군 언어 혹은 이디시어에서 유래했으며 서슬라브어군 언어로서의 뜻은 갈까마귀라는 것을.

카프카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태생적으로 이디시어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카프카는 프라하의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한 마리의 검은 까마귀라는 것을.

그 까마귀를 에워싸서 날고 있는 무리들이 그 유랑극단의 배우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한 마리 검은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카프카의 문학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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