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가 작은 문학을 착안하게 된 것에는 이디시어를 사용하는 유랑 극단의 공연을 본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독일어와 슬라브어의 영향을 받은 이디시어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이긴 하지만 주류 유대인의 언어가 아니며 일정한 영토를 확보하지 못한 언어이다. 이디시어는 사실 자신의 영토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뿌리 내리기를 스스로가 거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디시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유럽의 중부와 동부 지역에서, 그 중에서도 주로 동부 유럽지역을 중심으로 살아온 떠돌이 유대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살아가던 땅에는 국가라는 전체적인 주체와 영주라는 지역적인 주체가 항상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결코 버리지 않았기에 어느 한 곳에도 정착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애초부터 유랑 생활을 선택했을 수도 있고 정착을 했다가도 정치적⋅사회적인 이유로 인해 다시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했을 수도 있다.
카프카는 그들의 언어에서 질곡의 세월을 떠돌아다니며 살아온 삶의 흔적이 남아있음을 알아차렸다. 카프카가 그들을 만난 것은 카프카의 문학에 있어 절대적인 사건이었다. 그들의 언어가 움직이며 변화한 것처럼 문학 작품을 하나의 틀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디시어를 사용하는 그 떠돌이 유대인 유랑극단의 공연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카프카는 작은 민족의 문학이 큰 민족의 문학보다 더 질긴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카프카와 같은 유대인들이, 국가라는 거시적인 영토화를 이루지 못하였음에도 이천 년이란 세월 동안 그들의 민족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와 흡사한 것이기도 했다. 문학의 생명력은 미시적인 소재의 문학화에 있으며 그 미시적인 소재들에 대한 완벽한 문학적 소화가 민족 문학의 거시적인 생명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즉 민족 문학이라는 거시적인 문학의 영토화는 그 민족만이 가진 미시적인 소재의 문학적인 영토화에 그 숨결이 닿아 있는 것이다.
1911년 12월 25일에 카프카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일기장에 남긴다.
작은 민족의 기억이라고 해서 결코 큰 민족의 기억보다 작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은 민족은 그들이 가진 기억의 소재를 큰 민족보다 더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게 된다.
물론 문학에서 일하는 작은 민족의 전문가 수가 큰 민족보다 더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민족 문학에 있어서는 문학 자체가 주된 관심사는 아니며 문학은 그 민족의 관심사의 일환으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문학의 보존이 순수한 문학적 차원은 아니더라도 비교적 확실하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작은 민족의 민족의식이 그 민족의 개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누구든지 자신의 민족 문학에 대해서 배우고 보호하며, 항상 옹호할 태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설령 그것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적어도 그것을 완전하게 옹호할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1911년 12월 25일 카프카의 일기 중에서)
이 번역에는 이해를 돕기 위한 작은 의역이 일부분 포함되어 있다.
카프카의 문학은 이디시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의 자유로운 영혼과, 기성의 체제에 굴복하지 않는 저항 정신에 닿아 있다. 그들은 정착하지 않기 때문에 동화되지 않았고, 동화될 수 없기 때문에 정착할 수 없었다. 그들의 혈관에는 자유를 향한 유랑이라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영토화를 하지 못한 소수가 아니라 기성의 영토화로부터 탈주하여 재영토화를 이루어 낸 소수의 다수인 것이다.
여기까지 발걸음을 디딘 독자라면 알게 된다. 존재가 움직이듯 언어 또한 움직인다는 것을. 인간은 움직이는 개체이기에 인간의 문학 또한 움직이는 개체라는 것을.
문학의 움직임은 인간에게 아름다운 문학적 풍경을 펼쳐 보인다. 문학이 펼쳐 보이는 풍경 속에서 인간은 사유하고 고뇌하며 인간의 실존을 찾아 나선다.
문학적인 인간에게 체제의 중심은 인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국가와 신이 쌓아 올린 경계 또한 스스로를 허물어 버린다. 지극히 문학적이라 할 수 있는 인간에게는 낱말 하나하나가, 문장 한 줄 한 줄이 세상을 향해 쌓은 국경이며 은밀히 전해 받은 견고한 신탁(神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