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언어의 유희

문학, 언어의 유희



1.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문가라 일컬어지고 있는 이라고 하든 또는 그렇지 않은 이라 하든, 무척이나 다양하게 제시될 수도, 어쩌면 그들이 쏟아내는 생각보다 훨씬 단순할 수도 있다.

그 대답이란 게 질문에 대한 정답인 것은 아니기에, 무엇이 된들 상관할 바는 없다. 여기에서도 하나의 대답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인간이 사용 중이긴 하지만, 인간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신과 자연의 섭리에 대한 숙성된 인간의 이해가 태초의 창조물을 찾아낸 것이며,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언어는 이후 긴 진화의 과정 속에서 수많은 응용과 변이를 받아들여 현재와 같은 형상을 갖추게 된, 창조의 과정에서는 이차적 창조물이었지만 인간에게는 먹고 번식하는 것만큼이나 소중하게 된,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소통과 표현의 수단이라 할 수 있다.


태초 인간에게 내려진 또는/그리고 인간이 찾아낸 언어란 게 신이나 자연의 만물과 직접적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완전체로서의 언어였는지, 아니면 신성이나 자연성의 아래 단계에서 단지 인간끼리의 소통을 위한 인간만의 언어였는지, 또는 신과 자연과의 최소한의 소통이 허락된 제한적인 언어였는지는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그것이 완전한 언어이었든지 불완전한 언어이었든지, 어찌 되었든지 간에 시간은 흘러갔고 인간의 사고 능력은 자의를 타의로, 타의를 자의로 합리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언어를 진화시켜 왔다. 물론 이것이 인간의 관점에서는 진화라고 할 수 있지만 창조물의 관점으로는 퇴보라고도 볼 수 있다. 결국 어느 것이 진화한다는 것은 한 편에서는 퇴보의 과정을 밟게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아무튼 이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은 문자를 만들어 사물의 현상과 형상, 사고 속에 머물러 있던 관념과 추상을 문자의 뭉치인 글로 옮겨내게 된다.


글은 언어와 문자를 매개체로 하고 있지만 글은 좀 특별하다. 글은 결코 언어와 문자 안에 갇히지 않는다. 글에는 영적이고 정신적이며, 감상적이면서도 형이상학적인 정신의 작용과, 자유로이 유영하는 사색의 결과물이 아무런 제약 없이 담기게 되니, 인간이 찾아내어 진화시킨 언어는 글을 통해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인간성을 발현시키는 가장 위대한 수단이자 도구가 된 것이다.




2.

언어가 ‘인간 간의 소통의 도구’라는 언어의 보편성과 일반성에서 한 단계 시야를 높여 보자.

어떤 이의 언어는 예술을 위한 도구 또는 예술 그 자체이고 어떤 이의 언어는 사색의 정원을 가꾸는 도구이다.


그렇다면 문학에 있어서 언어란 무엇일까. 어떤 이의 문학은 눈에 보이는 것이나 심상이 글을 통해 발현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어떤 이의 문학은 사색의 오솔길을 걸어가는 기약 없는 발걸음 같은 것이기도 하다. 또한 어떤 이의 문학은 언어 속에 남아 있는 태초의 신성을 찾아 나선 먼 여정이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이에게 문학은 예술과 철학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사색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앞에서 열거한 것들과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은 이렇게 얘길 한다. ‘문학은 신 또는 자연과의 결별에 대해 논리적인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된 판결의 기록’이라고.


학자에 따라서 또는 작가에 따라서 다양한 시야로 정의하고는 있지만 문학(文學, literature)에 대한 가장 대중적인 정의는 ‘언어를 표현매체로 하는 예술 및 그 작품’, ‘문학 작품의 구성, 그 창작과 감상,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역사적 문맥 등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과 같은 것이다.


정의(Definition)란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하는 것으로서 개념이 속하는 가장 가까운 체계를 들어 그것을 구별한 것일 뿐이다. 정의라는 것은 단지 누군가에 의해 기술된 하나의 개념일 뿐이고 증명을 통해 이미 진리라고 인정된 일반 명제인 정리(Theorem)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문학에 대해 정의 한 가지를 더 덧붙여 넣어도 좋겠다.

“문학은 언어를 오브제로 삼은 문자의 예술이다.”



3.

문학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본다. 문학을 하나의 개체(Entity)로 본다면 문학이란 개체에서 다른 개체와 구분되는 식별자(Identifier)로서의 유일한 속성(Attribute)을 찾아내어야만 하는데, 비록 그것이 문학의 속살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는 보이지만 딱히 끄집어내기는 힘들기도 하다. 그 이유는 어쩌면, 아직 진화를 끝내지 못한 언어 자체에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문학에 대해서 이런 식의 접근은 어떨까. 문학이란 ‘문자와 언어를 잘 정제시켜 엮어낸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글의 예술’이고 ‘언어의 지적 또는 감상적 유희’이니 ‘문학은 곧 예술이다’는 명제가 성립되는 것으로 볼 수 있겠고 따라서 ‘문학가는 곧 예술가’라는 명제 또한 참의 값만을 갖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런 방식으로 임계치(Thereshold value)를 낮춘 논리와 상상력을 문학과 언어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온다면 그것들을 통해 ‘사실을 찾아가는 이성적이고 감상적 역할’을 긍정적으로 기대해 볼 수도 있겠고, 궤변과 이성적 추론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언어적 유희에 조금 더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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