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독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한 독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카프카가 말한 진정한 독서란 무엇일까. 카프카는 독서의 의미에 ‘책을 읽는다는(讀書)’ 정서적이고 정신적인 행위 이상의 다른 어떤 것들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가 말한 것처럼 자신을 찌르고 할퀴어서 결국에는 상처를 남기는, 그런 류의 책을 찾아 읽는 것만이 진정한 독서라는 신념을 가졌던 것일까. 문자들에게서 상처를 받고 문자들을 통해 그 상처를 치유해 가는 것만이 진정한 독서인 것일까.


카프카에게는 글을 쓰는 것이 곧 구도를 향한 성스러운 몸짓이었던 것처럼 책을 읽는 것 또한 구도를 향해 가는 성스러운 걸음이었다는 것을, 여기까지 와서야 알아차리게 된다. 괜찮다. 모든 깨달음은 원래가 때 늦게 찾아오는 것이기에. 그래서 ‘이제야’라기 보다는 ‘이제라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 가장 빠른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독서란 게 카프카가 말한 그런 것이라면, 그리고 카프카는 그런 책만을 찾아서 읽었다면, 카프카는 책 읽기로 인해 받았을 무수한 상처들을 어떤 책 읽기를 통해 어떻게 치유하였단 말인가. 어쩌면 그것들 중에 치유하지 못한 채로 남겨져야만 했던 것들이, 치유할 수 없었던 것들이, 결국에는 카프카를 사십이 갓 넘은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이제 나 스스로를 돌이켜 볼 시간이다.

“그 시절에 나의 손에 잡혀 있었던 책들이, 아니 그때 나의 손이 집어 들어야만 했었던 책들이, 나의 내면을 찌르고 상처를 주었던 책들이었던가. 그랬다면 그 상처는 내가 살아가는 것에 있어 지금까지 어떤 작용을 일으켰으며 지금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돌이켜 보니 그가 그 시절에 만났던 카프카의 글들은, 누런 종이 위에 검은 잉크로 꾹꾹 박혀있던 카프카의 텍스트들은, 분명 그런 것들이었음이 틀림없다. 활자가 찍어 놓은 카프카의 텍스트들은 그에게 무수한 상처를 새겨 넣었고 그 상처로 인해 그의 글 읽기는 더욱 치열해졌었다.

글 읽기에게서 받은 상처는 오직 글 읽기만이 치유할 수 있다고, 그때의 그는 신앙과도 같이 굳게 믿었었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바치는 성스러운 기도와도 같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 상처는 책이 준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에게 있어 왔던 것이란 걸. 책을 읽으면서 받게 된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의 호수바닥에 내려 앉아 아무런 미동 없이 가만히 있어 왔던 것이란 걸, 글 읽기는 단지 그것을 소환해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것이 소환에 응하는 일은, 그래서 그것이 현실에서 마주해야하는 일은 비극과도 같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 밖에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기에, 당시의 그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또한 그것은, 그가 그렇게 하게 된 것은, 이미 누군가가 정해 놓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복종내지는 순응의 결과라는 것을, 어느 날인가에는, 다행스럽게도, 문득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그 시절의 글 읽기는, 그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함으로서 ‘비극을 들여다보는 일이,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이나 불안감, 긴장감 따위를 해소되고 이를 통해 마음이 정화되는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끼게 하는 것처럼, 스스로에 의한 치유의 시간을 가지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 시절의 책 읽기를 돌아봄으로서 지난 시간의 상처 더듬기 행위는 다시 카프카에게로 옮겨 간다.

“카프카는 대체 어떤 책을 찾아 읽었던 것일까. 그에게 상처를 새겨 넣은 책은 대관절 어떤 책이었단 말인가.”

“카프카를 향해 날을 세웠던 도끼는 어떤 것이었을까. 카프카는 그 책으로 인해 어떤 상처를 입었던 것일까.”

지금까지 몇 번의 십년이란 시간이 넘어가도록 카프카와 가까이에서 지내왔고, 서재의 책장에는 그의 이름이 박힌 책들이 언제나 꽂혀 있으며, 그 책들의 페이지마다에는 검누런 손때 자국이 스며들어 있어서, 나름대로는 카프카를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건만, 어째서 선뜻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인지, 금세라도 얼굴이 달아오를 것만 같다.


카프카를 안다는 것이 그와 그의 글에 얽힌 무수한 작은 비밀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에 이제야 겨우 오르게 되었다는, 시작을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란 말인가.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카프카를 알아가다가 보면 하나가 끝나는 곳마다에서 늘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래서 하나의 끝자락이 저 너머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다시 가슴이 설레곤 했으니.


지금 우리의 손에 잡혀 있는 책은, 물론 외적 환경과 자신의 내적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은 우리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우리가 인간이기를,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가르치고 안내하는 형이상학적인 도구’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카프카는 “책을 읽는 것은 한 사람의 인간을 만드는 행위이다.”라는 말을 ‘도끼’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책은 도끼다.”라고 극단적으로 표현하였다. ‘그 사람이 읽은 책이 바로 지금의 그 사람’이며 ‘그 사람이 읽고 있는 책이 내일의 그 사람’이기에 책은 그 사람 자체를 만드는 도구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껏 무수한 도끼들이 나의 삶과 정신을 가격하였고 그 각각의 가격들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무수한 상처들로 자리 잡았다. 인간은 상처들로 이루어진,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는 ‘상처 많은 존재’라는 것을, 살아보니 알 것 같다.

“알을 깨고 나오려는 인간은 그 상처를 스스로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상처에 대해 강한 내성을 가졌을 때에만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상처의 내성을 갖기 위해서는 상처가 주는 아픔을 무수히 겪어 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상처들은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마중물이었다. 그 마중물이 있었기에 인간은, 자신의 내면 깊이에 고여 있는 생명수를 길어 올려, 삶이라는 척박한 대지를 걸어가는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뉴욕에서, 고일석(Dr. Franz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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