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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책: 얼어붙은 바다를 위한 도끼

카프카의 책: 얼어붙은 바다를 위한 도끼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들뢰즈는 자신이 던져 놓은 질문에 대해 답변이나 실마리를 직간접적으로 제시하였지만, 카프카는 질문을 던지기만 했을 뿐, 사실 무엇이 질문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카프카 식의 질문이지만, 답이라든가 실마리에 대해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독자들은 오직 카프카의 작품들과 그의 행적들을 통해서만 그것들을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카프카가 말한 ‘책은 도끼’라는 문장 또한 여러 가지의 질문과 답을 찾게 만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것은, 그와 도끼 그리고 책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어째서 카프카는 책을 도끼라고 한 것일까.

카프카에게 책은 왜 도끼여야만 했던 것일까.

카프카에게 책은 대체 어떤 종류의 도끼였던 것일까.

그 다음으로는 인간의 삶과 책, 그리고 도끼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범위를 넓혀 볼 수 있다.

책이 인간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책은 인간 정신의 도끼’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인간의 정신에 있어 도끼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설 차례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카프카의 원문을 살펴보는 것이다.

1904년의 어느 날, 스물 한 살의 젊은 카프카는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만 하는지’, ‘책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텍스트에 박아서 분명하게 밝혔는데, 그 텍스트 안에 ‘책은 도끼’라는 문장이 포함되어 있다.

편지의 길이로 인해 해당하는 부분만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독자 나름대로의 해석을 위해 영문을 함께 소개한다. 참고로 이 번역에는 문장의 가독성과 이해를 위해 일부의 의역과 부가적인 문장이 포함되어 있다.



진정한 독서란, 자신을 찌르고 상처를 줄 수 있는, 오직 그런 류의 책을 읽는 것이다.

I think we ought to read only the kind of books that wound and stab us.

만약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이 ‘마치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것’처럼 우리를 일깨우지 못한다면, 대체 왜 그 책을 읽어야만 하는 것일까. 네가 쓴 글이 그런 것처럼 우리를 일깨울 수 있어야만, 책을 읽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을까.

If the book we’re reading doesn’t wake us up with a blow to the head, what are we reading for? So that it will make us happy, as you write?


이런 맙소사, 신이시여, 만약 우리에게 책이 없다면, 그리고 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책이 우리가 쓸 수 있는 그런 것이라면,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해야만 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할 것이다.

Good Lord, we would be happy precisely if we had no books, and the kind of books that make us happy are the kind we could write ourselves if we had to.


하지만 우리에게는, 깊은 슬픔에 빠지게 하는 재앙이나,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이나, 모든 이로들로부터 떨어져 아주 먼 숲으로 추방되는 것과 같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

But we need the books that affect us like a disaster, that grieve us deeply, like the death of someone we loved more than ourselves, like being banished into forests far from everyone, like a suicide.


책은 우리 자신의 내부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위한 도끼임에 틀림없다. 그게 나의 믿음이며 결코 변하지 않을 신념이다.

A book must be the axe for the frozen sea inside(within) us. That is my belief.



‘읽을 만한 책이 무엇인지’, ‘읽어야할 책이 무엇인지’, ‘책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카프카의 이와 같은 신념을,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We ought to read only the kind of books that wound us)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또는 “작가라면 인간의 내면을 찌르고 상처를 줄 수 있는, 그래서 읽는 이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책만을 써야 한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아무런 상처를 주지 않는 그 수많은 책들은 카프카에겐 대체 무엇이었으며 우리에게는 무엇이란 말인가.


저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쓰게 되는 책을 대중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책과, 그렇지 않고 특정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책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표준국어사전에 따르면 독자(讀者)란 ‘책, 신문, 잡지 따위의 글을 읽는 사람’이다. 또한 대중(大衆)이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며, ‘엘리트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수동적ㆍ감정적ㆍ비합리적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의 무리’를 말하고 있다.


따라서 대중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책이란 ‘감정이라는 인간의 비합리성에 작용함으로서 보다 폭 넓은 독자층을 확보할 목적으로 쓰이고 제작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볍게 읽을 말한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에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는 책’이 대중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책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카프카는 자신이 그런 대중 독자의 한 사람이 되는 것을 엄격하게 경계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카프카가 말하고 있는 ‘도끼로서의 책’에는 이런 대중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책들은 철저하게 배제되었을 것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고전문학작품들에 대해서도 카프카의 책 고르기 습성은 결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카프카의 이러한 독서 패턴은 그의 ‘문장에 대한 지독한 편식증’에서 온 것이었으며 이와 같은 ‘문장 편식증’은 책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가, 비록 카프카만큼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가지게 되는 정신적, 정서적 성향일 것이다.


카프카의 이러한 성향은 길을 가면서도 계속해서 발현되었으며, 그로 인해 산책길에서도 서점들을 들러 선반에 꽂혀 있는 책들을 뒤적거리는 일을 그의 일상으로 만들었다.

서점에서 책을 뒤적거리는 일을 특별한 행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읽을 만한 책을 찾으려는 카프카의 눈빛은 대중 독자의 그것과는 분명 크게 달랐을 것이다.

카프카가 프라하의 서점 선반에서 찾으려고 한 것은 ‘세상이라는, 인생이라는, 얼어붙은 바다를 헤치고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도끼’가 될 만한 텍스트가 가득 박혀 있는 책이었을 것이다.


카프카의 이런 성향은 글을 쓰는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카프카가 쓴 글은 일반 대중 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소수의 엘리트 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기에 생전의 그는 대중 독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대중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한 무명의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카프카의 그러한 삶은 카프카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었기에, 대중 속에서의 카프카는 고독하였지만 작가 카프카는 결코 고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뉴욕에서, 고일석(Dr. Franz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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