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가면과 페르소나의 미학 중에서
우리는 왜 누군가의 ‘얼굴’을 통해서 ‘그 사람이 바로 그, 또는 그녀’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얼굴이 인식의 수단인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문화권에 따라, 그리고 개개인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한 가지는, 인간이 지닌 무수한 속성들 중에서 얼굴 표정이나 옷차림, 머리카락의 형태나 말투, 걸음걸이나 행동 패턴, 몸짓과 몸매 같은 것들은 스스로의 노력이나 외적 요인을 통해 변화를 주기가 용이하지만, 얼굴의 형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동으로 제작된 2세기 로마의 마스크(가면)
가면은 사람의 얼굴을 덮는 작용을 통해서 그 사람이 가진 인격을 또 다른 인격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물리적 도구이다. (Bronze Cavalry Sports Mask Roman 2nd century CE a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일반적으로 인간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변화라는 것은 대게의 경우 ‘물리적인 변화’를 의미하게 된다. 그것은 인간은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인지하고 있다”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근래에 와서는 얼굴의 형태 또한, 다른 속성들과 마찬가지로, 성형수술과 같은 방법을 통해 물리적인 변화를 줄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얼굴 형태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다른 속성들을 변화시키는 것에 비해서, 과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현재에도 훨씬 어렵다고 할 수 있다.(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얼굴 형태의 변화는 근본적인 형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분장과 같은 방법을 통한 일시적이고 일회성의 변화는 추후에 고려하기로 한다.)
이렇듯 얼굴을 바로 나 자신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얼굴은 바로 나 자신이며 나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얼굴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나이지만 내가 아닌 나'로서 '또 다른 내가 되는 길'에 들어서는 의도적인 행위가 된다.
거기에 더해서 얼굴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심적인 요인이나 정체성에 관련된 인간 내면의 변화와도 관련된 것임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자신의 얼굴에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한 가지 방법으로 인류는 오래전부터 얼굴을 가리는 도구인 가면(Mask)을 사용해 왔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인간은, 얼굴을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에 결국 가면을 쓴 얼굴이 그 사람의 또 다른 정체성이 될 수 있게 된다.
이제 ‘가면과 인간’에 대해 한 걸음 더 깊게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가면에 대한 고찰과 사색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 결코 건너뛰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과정인 것이다.
“가면을 알지 못하는 자, 결코 인간을 알지 못한다.”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가면을 알아야만 한다.”
“그 사람의 가면을 사랑하지 않는 자,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 사람’은 나 외의 다른 사람이기도 하지만 또한 바로 나이기도 하다.
인간이 가면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의 범위가 넓은 만큼 가면이 가진 스펙트럼은 인류의 문화에서부터 사회의 각종 문제까지 다양하고도 깊다. 이에 따라 가면은 인류학과 문화학 이외에도 예술학과 철학, 종교학과 심리학과 같은 다양한 학문 분야이외에도 영화산업 및 패션산업과 같은 각종 산업분야에서도 관심을 갖고 다루어지고 있다.
고흐의 자화상
고흐는 귀가 잘린 자신의 모습을 그림 속에 담았다. 그것은 인간이란 자신의 귀를 자르고서는 그 모습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식하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없다. 귀가 잘린 채 붕대를 감고 있는 고흐의 모습이 ‘가면을 쓴 고흐’인지, 아니면 양쪽 귀가 온전한 고흐의 모습이 ‘가면을 쓴 고흐’인지는. (Vincent van Gogh,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1889, Courtauld Institute)
이 글에 이어질 글들에서는 ‘가면의 언어적 의미’에서부터 ‘가면의 기원’과 ‘가면과 페르소나’, '가면의 종류'와 '가면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고 이를 통해 ‘가면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이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일본 전통극에서 사용하고 있는 Noh Mask
연기자들이 착용하고 마스크를 통해 관객들은 성별, 나이, 성격, 사회적 지위와 같은 캐릭터의 속성들을 짐작해 볼 수 있게 된다.
<카라바조, 가면과 페르소나의 미학> 중에서, by Dr. Franz Ko(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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