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과 얼굴,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

가면과 얼굴, 그리고 인간의 정체성


한 사람이 누군가 다른 한 사람을 '바로 그 사람'이라고 특정하여 인식하는 것에는, 그 사람만의 특징(features)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요인들이 단독으로 또는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특징을 다른 말로는 속성(attributes)이라고도 하며 어떤 한 사람의 속성이란 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특정한 값 또는 현재 발현되고 있는 특정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의 속성이란 어떤 한 사람을 그 또는 그녀라고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식별자를 말하는 것이며 개개인에 따라 아주 다양한 값이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이 만나고 있거나 알고 지내는 사람의 속성이 무엇인지, 또는 그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한 특별한 고민 없이도 서로가 서로를 구분하여 ‘바로 그 사람’으로 인식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특정한 사람’을 ‘바로 그 또는 그녀’로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인지능력을 원초적으로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인간 개개인이 가질 수 있는 속성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다.


• 그 사람의 머리 형태(헤어스타일)

• 몸집이나 키와 같은 몸의 형태

• 얼굴의 크기와 형태

• 상황에 따른 반응의 형태와 그때의 얼굴 표정

• 몸짓과 걸음걸이

• 말투와 목소리, 말할 때의 입 모양

• 입술 및 치아의 형태

• 손가락의 길이와 지문


위에서 열거한 것들을 포함한 여러 다양한 요인들이 ‘그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이고 중요한 요인은 그 사람의 ‘얼굴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을 인식하는 것에 있어 ‘얼굴 형태’의 중요성은 일반적인 사회적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얼굴 형태를 찍은 사진(이하 [얼굴 사진], 특정 시점과 특정 장소를 기반으로 고정된 얼굴 형태를 찍은 사진을 우리는 얼굴 사진이라 부른다.)이 포함된 신분증을 그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공식적인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얼굴은 서로가 서로를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보편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


카프카와 시인 이상.JPG

프란츠 카프카(좌측, 1883-1923)와 시인 이상(우측, 1910-1937)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바로 그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그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의 삶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과 사상이 이미지화되어 새겨지게 된다.


결국 얼굴을 인식하는 것은 한 사람을 그 사람으로 특정 짓게 하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가장 보편적이고 타당한 방법인 것이다.

또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분하여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미지화 작업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 새겨지는 이미지는 대상이 되는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프란츠 카프카의 얼굴 사진을 보면서는 ‘카프카의 소설’ 또는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 잠자’를 떠올리게 되고, 시인 이상의 얼굴 사진을 통해서는 ‘이상의 시’ 또는 ‘날개’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러한 인식의 방법은 사람의 몸에서 한 부분인 머리, 머리에서도 단지 앞쪽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얼굴이 그 사람임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일차적이고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 말은 '얼굴이 그 사람 자체'라는 의미가 된다.


우리가 어떤 한 사람을 ‘바로 그 사람’으로 인식하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 얼굴이란 것은 또한 우리라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인지 능력이 우리의 기대만큼은 세밀하지 못하다는 것을 방증傍證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인간의 정체성과 얼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얼굴을 통해 그 사람을 인식한다는 것은 얼굴이 그 사람의 실체이며 또한 얼굴이 바로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얼굴을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나의 얼굴이 바로 나’라는 한 줄의 문장이 대답이라고 여길 수 있게 만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지는 것을 결코 막지 못한다.


나의 얼굴이 나의 정체성이란 말인가.

나는 나의 얼굴을 ‘바로 나’라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나’, ‘내 안에 있는 것 같은 나’는 과연 누구이며 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카라바조, 가면과 페르소나의 미학> 중에서, by Dr. Franz Ko(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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