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와 관련되어 로마 경찰과 법원에 남아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의 기록 이외에도 카라바조의 사적인 일들과 작품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다양한 문헌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카라바조에 대한 이러한 내용들은 주로 17세기에 출판된 ‘예술가들의 전기와 작품을 기술한 초기 예술사학자들의 출판물’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이 책들에서 카라바조는, 책을 집필하던 당대에, 또는 그 이전 시대와 당대에 활동했던 여러 예술가들 중에 한 명의 예술가로 다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책들의 텍스트들을 통해 카라바조를 접할 때는 ‘읽는 자의 전제’가 필요하다.
전제(前提, premise)의 사전적 의미는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을 이루기 위하여 먼저 내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그 책들을 통해 카라바조를 접하기 전에 그것에 대한 전제가 필요하다는 말은, 카라바조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추고, “카라바조라는 화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예술 애호가(Art Lover)이자 읽는 이(Reader)로서의 분명한 관점을 갖춘 상태에서 그 책들의 텍스트를 더듬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때 카라바조에 대한 이해와 관점은 확고하면 할수록 좋다.
다소의 주관이 그것에 끼어든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이 지나간 것을 인식하는 방법이다.
만약 카라바조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에서 이 책들의 텍스트를 훑다가 보면 그 시선은 더욱 기울어지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이 책들을 접할 때 주의할 점은 이 책들 각각이 하나의 작품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완전하게 논픽션적이라고 만은 할 수 없는 부분들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책에는 원래 ‘글을 쓰는 이’의 생각이 담겨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책이 가진 태생적 운명’이라서 책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따라서 책을 쓰는 이는, 스스로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지 간에, 책의 태생적 운명을 ‘정당화’하고, 결국에는 ‘행위화’를 통해 현실 세상에 구현해 내는 것을 피해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책을 읽는 이 또한 책의 텍스트에는, 이런 식의 정당화와 행위화가 실행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카라바조에 대해서 기술한 17세기의 그 텍스트들이, 1610년에 사망한 카라바조를 직간접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생존자들의 증언과, 당시의 각종 자료들을 통해 수집되고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카렐 만더가 저술한 1604년의 <화가들에 관한 책>은 카라바조가 살아있던 당시에, 그것도 로마에서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당대에 집필하고 출간한 것이어서 카라바조에 대한 내용에 있어, 특히 당대의 사회적 평가와 좀 더 가까웠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그 책들의 내용에 영향을 준 이들 중에는 카라바조를 직접적으로 만나보지 못했으면서도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카라바조에 대한 루머 수준의 얘기를 마치 자신이 직접 목격하고 겪었던 사실인 것처럼 꾸며 말한 이들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카라바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상당한 세월이 흘러간 일이었기에, 그들의 기억에는 적지 않은 변색과 상당한 과장이 가해졌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텍스트들을 카라바조를 주제로 한 픽션이라고는 할 수 없다.
누군가의 생애에 대해 기술함에 있어 이와 같은 현상은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작용, 즉 일종의 부작용(side effect)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현상과 작용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전기 작가라면 누구나가 가질 수밖에 없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전기 작가들 또한 그런 현상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주의를 기울여 ‘객관적인 사실들’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였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어냈을 것 같은 얘기들이나, 신뢰하기 어려운 얘기들을 배척하였을 것이고, 그랬을 것 같긴 하지만 너무 큰 과장이 끼어들어 있는 얘기들은, 이미 밝혀져 있는 다른 사실들과 작가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꾸며 붙인 것 같은 부분들을 벗겨내고 그 핵심만을 기록하고자 노력하였을 것이다.
책이 그것을 쓰는 사람의 생각을 닮기 마련이듯이, 책의 텍스트가 쓰는 사람의 생각을 반영하기 마련이듯이, 책의 내용은 그것을 읽는 사람의 생각을 닮아지게 된다.
책을 쓰는 일은 힘든 일이다.
더욱이 누군가의 생애를 텍스트로 기록하는 일은 더욱 힘든 일이다.
말을 통해 누군가에 대해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텍스트로 옮겨 적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그것을 텍스트화 하는 이가 ‘사회적 명성과 지위’를 가졌다면, 대중 독자들의 기대는 상대적인 것이기에, 그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 된다.
책의 내용을 기울어지게 만드는 것은 그것을 쓰는 저자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독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제대로 읽고 제대로 해석하는 것은 글을 제대로 쓰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일 수 있다.
책은 ‘아무런 전제 없이’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 확고한 전제를 두고서’ 읽어야만 하는 형이상학적인 영토이다.
그래야만 책이 인생이라는, 세상이라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며 항해할 수 있게 해주는 도끼와도 같은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잣거리에서나 회자될만한 것들을 텍스트화 한 것을 읽는 것에는 아무런 전제가 필요치 않다.
가십거리를 읽는 것과 같이 그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에 눈길을 두는 것은, 나이 든 노인이 소일 삼아 하는 놀이와도 같은 것이어서 ‘시간을 죽이는 행위’와 하등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책에게서는 아무런 책임을 찾아볼 수 없다.
쓴 저자가 아무런 책임을 갖지 않고 텍스트를 나열한 것처럼 그 책을 읽는 독자의 눈에도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이 그런 책을 읽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카라바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17세기에 출간된 4종의 책들을 연도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1604년에 출판된 카렐 반 만더(Karel van Mander, 1548–1606)의 <화가들에 관한 책>(The Book of Painters)
2) 1617년에서 1621년 사이에 쓰인 줄리오 만치니(Giulio Mancini, 1559–1630)의 <회화작품에 대한 고찰>(Thoughts on Painting)
3) 1642년에 출판된 지오반니 발리오네(Giovanni Baglione, 1566–1643)의 <1572년부터 1642년까지 활동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 조각가의 생애>(The Lives of Painters, Sculptors, Architects and Engravers, active from 1572–1642)
4) 1672년 출판된 지오반니 벨로리(Giovanni Pietro Bellori, 1613–1696)의 <예술가들의 생애>(Lives of the Artists)
17세기에 출간된 이들 네 권의 저서는 ‘카라바조의 삶과 작품’에 대한 내용을 직접적으로 담고 있는 책들이다.
이후에 발간된 저서들에서 다루고 있는 카라바조에 관한 내용들은, 대부분이 이 4종의 책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그것에 대한 보완이나 비평에 대한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사를 공부하거나 예술사에 관심을 가진 예술 애호가에게는 이 4권의 책들은 반드시 알고 있어야만 하는 중요한 자료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 저서들 이외에도, 이들보다 한 세기 전인 1550년에 첫 버전이 출간된 조르지오 바사리의 저서 <가장 뛰어난 화가들과 조각가들, 그리고 건축가들의 삶>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은 <예술가 열전>이란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5) 1550년에 출판된 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의 <예술가 열전> 또는 <가장 뛰어난 화가들과 조각가들, 그리고 건축가들의 삶>(이탈리아어: Le Vite de' più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d architettori, 영어: Lives of the Most Excellen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
조르지오 바사리의 이 책은 카라바조(1571-1610)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간되었기에 카라바조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저서는 예술가들의 전기를 집필하는 것과, 예술사를 연구하는 것과 같은 ‘예술사학’에 있어 초석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아주 중요한 작품이다.
그래서 조르지오 바사리를 ‘최조의 예술사학자’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카라바조의 삶과 작품들을 기술한 카렐 반 만더와 줄리오 만치니, 지오반니 발리오네와 지오반니 벨로리와 같은 17세기의 전기 작가들 모두가 분명 조르지오 바사리의 저서 <가장 뛰어난 화가들과 조각가들, 그리고 건축가들>를 읽었을 것이고 그것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카라바조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17세의 저서들은 이어지는 장에서 각각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