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카라바조(1571.9.29-1610.7.18.(?))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 Caravaggio)이다. 카라바조의 성은 메리시이고 이름은 미켈란젤로이다.
그는 1571년 9월 29일 이탈리아의 북부지방인 롬바르디아(Lombardia) 주의 주도인 밀라노(밀란, Milan)에서 아버지 페르모 메리시(Fermo Merisi(Fermo Merixio), 1540-1577)와 어머니 루치아 아라토리(Lucia Aratori, -1584) 사이에서 첫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카라바조의 출생지에 대해 밀라노가 아니라 카라바조라는 작은 타운이라는 견해도 있다.)
기록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 페르모 메리시는 밀라노에서 북동쪽으로 약 40밀로미터 떨어져 있는 베르가모(Bergamo)의 남쪽 타운인 카라바조(Caravaggio) 지역에서 한 귀족(후작, Marchese)의 집안을 관리하는 건축 장식가(Architect Decorator)이자 가정 관리인(Household Administrator)이었다고 한다.
화가 카라바조와 그 가족의 삶의 바탕이었던 롬바르디아 주와, 밀라노, 베르가모, 카라바조 지역들은 카라바조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 죽음에 대한 공포와, 카라바조의 성향과 성격의 형성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곳들이다.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Lombardia) 주의 주도인 밀라노(Milan)와 베르가모(Bergamo), 카라바조(Caravaggio): 화가 카라바조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또한 십대 시절의 대부분을 시모네 페테르자노 화실에서 도제로 지내면서 화가로서 성장한 곳이 이탈리아 북부지방의 이들 지역이다.
베르가모는 롬바르디아 주에 속하는 한 지역으로 밀라노에서 동쪽 방향으로 약 삼십 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알프스 산맥 기슭에 위치한 작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카라바조가 어린 시절을 보낸 카라바조 지역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주에 있는 작은 타운이다.
이 타운의 지명인 카라바조가 화가 카라바조의 영원한 이름이 된다. //
카라바조의 아버지는 스물두 살에 첫 번째 결혼을 하여 딸 마르게리타 메리시(Margherita Mersi)를 낳았으나 이년 후인 스물네 살이 되던 해에 그 아내가 사망하면서 다시 혼자가 되었고, 그로부터 육년이 지나 서른 살이 되던 해인 1570년에 두 번째 아내인 루치아 아라토리(Lucia Aratori)를 만나 이듬해인 1571년 9월 29일에 장남인 카라바조를 낳았다.
카라바조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는 4명의 자녀들이 태어났는데 그 중에 첫째이자 장남이 현재 우리가 ‘카라바조’라고 부르고 있는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이고, 둘째가 후일에 예수회의 신부가 된 남동생 조반니 바티스타 메리시(Giovanni Battista Merisi)이며, 셋째가 여동생 카타레나 메리시(Caterina Merisi)이고, 넷째가 조반 피에트로 메리시(Giovan Pietro Merisi)이다.
이들 네 명의 현제 중에서 막내인 조반 피에트로 메리시는 어릴 적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라바조가 다섯 살이 되던 해인 1576년 그의 가족은, 당시 밀라노를 황폐화시킨 흑사병을 피하기 위해 밀라노에서 카라바조 지역으로 급하게 이주 하였지만 카라바조가 여섯 살이 되던 해인 1577년에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흑사병에 걸려 같은 날에 한꺼번에 사망하였다.
중세시대를 공포에 떨게 한 흑사병을 단지 14세기에 국한된 전염병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중세시대의 흑사병은 14세기에서부터 17세기에 이르기까지, 학자들에 따라서는 1346년에서 1671년까지, 규모가 크든 작든 매 해마다 유럽의 어느 지역에선가 반드시 출현하여 사람들을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치명적인 전염병이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르네상스 또한 흑사병으로부터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시기에 '흑사병을 견디면서 인류가 이룩해 낸 소중한 문화운동‘인 것이다.
1576년에 그 흑사병이 카라바조와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던 밀라노를 휩쓸면서 카라바조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흑사병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가 휩쓸고 지나간 시대에, 혼자 살아남은 여자의 몸으로 어린 자녀들을 돌봐야만 했던 어머니의 슬픔과 절망을 카라바조는 맏아들로서 묵묵하게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때의 카라바조는 비록 아직 어린 나이이기는 했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이 집안에 남아 있는 ‘가장 나이 많은 남자’라는 현실의 무게감을 어떤 식으로든 간에 인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카라바조는 언젠가, 그가 화가가 된 후에,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초상화를 그렸을 것이지만 아쉽게도 남아 있지 않다.
어린 시절, 소중한 가족들과 지인들을 연이어 잃으면서 가슴에 새겨진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과 그로 인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카라바조의 인격 형성과, 삶에 대한 태도 및 작품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은, 당시 카라바조가 처했을 상황들에 대한 추측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그래도 그 와중에도 다행이었던 것은, 어머니 루치아 아라토리의 현명한 처신 덕분에 흑사병 이후로도 카라바조의 가족은 그 지역에서 가장 유력한 가문이었던 스포르차 가문(Sforzas Family) 및 코론나 가문(Colonna Family)과 나름대로의 ‘좋은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는 것이다.
물론 그 관계를 좋은 관계라고 말하는 것은 카라바조 집안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그들 가문들의 입장에서는 단지 ‘아랫사람에 대한 호의 또는 배려 차원’이었을 것이다.
그들 가문과의 관계가 어떤 관계였던 간에 당시 그들 가문과 이어나간 관계는 후일에 카라바조가 로마에서 그들 가문의 후원을 받음으로서, 화가로서 성공을 거두는 데에 있어 중요한 발판이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카라바조의 어린 시절과 성장기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완전히 신뢰할만한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카라바조의 전기와 여러 가지 문헌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카라바조는, 흑사병을 피해 밀라노에서 카라바조 지역으로 가족 전체가 이주했던 5살(1576년) 무렵부터 13살이 되던 해(1584년)에, 당시 밀라노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유명 지역 화가인 시모네 페테르자노(Simone Peterzano)가 운영하는 화실(공방, 작업실)에 도제로 입소하여 미술 교육을 받기 시작하기 전까지 약 8년간을,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주의 베르가모에 속하는 한 작은 타운인 카라바조에서 계속해서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카라바조는 현재 약 16,000여 명의 인구가 살아가고 있는 약 32평방킬로미터(약 12평방 마일) 크기의 작지만 아름다운 전원 마을이다.
또한 어머니 루치아 아라토리가 1584에 사망하면서 카라바조에게 얼마간의 유산을 상속해 주었고 이 유산 덕분에 도제기간을 마친 후에 약 4년간을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는 것으로 보면, 1577년에 아버지 페르모 메리시 사망하면서, 남아 있는 가족들이 살아갈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재산을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