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일가의 성(姓, Family name)은 메리시(Merisi)이고 부모가 그에게 지어준 이름은 미켈란젤로이다. 따라서 카라바조의 원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인 것이다.
미켈란젤로 메리시라는 이름을 가진 그가 카라바조라는 지명으로 불리게 된 것에 대해서는 르네상스시기에 태어난 곳 또는 출신지의 지명으로 예술가의 이름을 부르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여, ‘카라바조’란 지명을 출신지로 이름에 붙이게 되면 카라바조의 전체 이름(Full Name)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즉 ‘카라바조 출신의 미켈란젤로 메리시’가 되어 현재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화가 카라바조의 이름과 비슷해진다.
하지만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화가 카라바조는, 밀라노에서 태어났고 카라바조란 지역에서는 다섯 살에서부터 열세 살까지, 약 8년이라는 어린 시절의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게다가 카라바조가 그곳에서 살았던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따라서 태어난 곳의 지명을 이름에 붙여 사용한다면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밀라노(Michelangelo Merisi da Milano) 즉, ‘밀라노의 미켈란젤로 메리시’가 화가 카라바조의 전체 이름이 되어야 한다.
또한 카라바조가 십대 시절의 도제 생활을 통해 화가로서 성장한 시모네 페테르자노 화실 또한 밀라노에 소재했기 때문에, 화가로서의 출신지로 보더라도 ‘카라바조의 미켈란젤로 메리시’아 아닌 ‘밀라노의 미켈란젤로 메리시’라고 불리는 것이 더욱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화가 카라바조의 이름이 카라바조라는 지명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궁금증을 가질 수 있다.
"카라바조는 왜 자신이 태어나고, 십대 시절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화가로 성장한 곳의 지명인 밀라노가 아닌,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지명이, 그것도 다섯 살에서 열세 살까지, 채 십 년도 되지 않는 시간을, 제대로 된 기록조차 없이 살았던 카라바조란 지명이 자신의 이름이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추측을 내놓을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카라바조의 어린 시절에 대한 사실 대부분은 객관적인 기록들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연구자들의 추측을 기반으로 한 것임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밀라노에서 도제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카라바조라고 불렸을 것이다.
어린 시절을 카라바조란 타운에서 살았던 화가 카라바조가, 그림을 익히고 화가로서의 토대를 닦은 것은 밀라노에 소재한 시모네 페테르자노 화실이니, 그 화실에 소속되어 있던 당시의 도제들과 화가들은 열 세 살의 어린 그를, 초기에는 '카라바조라는 시골에서 온 미켈란젤로 메리시'라고 불렀을 것이지만, 이 이름이 너무 길기 때문에 전체 이름에서 일가의 공통적인 이름(성)인 메리시를 생략한 채 ‘카라바조에서 온 미켈란젤로’ 또는 ‘카라바조의 미켈란젤로’라는 식으로 지명과 이름만으로 불렀을 것이다.
이것마저도 점차 카라바조라는 지명만으로 그의 이름을 대신하여 불렀을 것이다.
이것을 통해 당시 시모네 페테르자노 화실에는 카라바조 출신의 도제나 화가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외에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만약 카라바조 출신의 다른 도제나 화가가 그 화실에 있었다면,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미켈란젤로 메리시를 카라바조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것이다.
이와 같이 카라바조란 지명이 화가 카라바조의 출신지로서 그의 이름이 된 것은, 어디까지나 십대의 카라바조가 밀라노의 시모네 페테르자노 화실에서 도제로 지내던 시절에 생겨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화가 카라바조의 주된 활동지였던 로마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화가 카라바조의 출신지는, 카라바조라는 이탈리아 북부의 한 작은 타운이 아니라 밀라노라는 대도시이다.
따라서 화가 카라바조가 그의 이름으로 카라바조란 지명을 사용하게 된 것이 ‘그의 출신지’ 때문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밀라노에서의 도제시절을 배경으로 한 것임을 함께 설명해야만 그의 출신지에 대한 혼동으로부터 피할 수 있게 된다.
정리하자면 카라바조의 태생적 출신지는 밀라노이며 어린 시절에 살았던 출신지는 카라바조이다.
그리고 도제시절을 보내며 그림을 익힌 화가로서의 출신지는 밀라노이다.
여기에 도피생활을 이어가며 영원의 도시 로마로 돌아가게 되기를 갈망하던 떠돌이 시기에는 로마에서 온 카라바조(로마의 카라바조)라고 불렸을 것이다.
따라서 카라바조의 마지막 출신지는 밀라노나 카라바조가 아니라 로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카라바조의 화가로서의 행적을 들여다보게 되면 그는 ‘밀라노 출신’이라거나 ‘카라바조 출신’이라고 불리기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영원의 도시 로마의 카라바조’라고 불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렇게 남겨지기를 분명 바랐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화가 카라바조는 ‘미켈란젤로 메리시’라는 그의 본명이 아니라 로마와 밀라노, 그리고 카라바조란 세 개의 출신지 지명으로 우리에게 남아있게 되었다.
두 번째,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카라바조라고 불렸을 것이다.
또한 미켈란젤로였던 그의 이름이 카라바조로 불리게 된 것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살펴보면, <피에타>와 <다비드 상>을 조각하였고 로마 교황청에 소재한 <시스티나 채플 천장화>를 그린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와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이 동일했기 때문에, 타의에 의해 또는 카라바조 자신에 의해, ‘카라바조의 미켈란젤로’에서 미켈란젤로라는 이름 부분을 떼어내고 ‘카라바조’라고만 부르게 되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덧붙여서,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이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남자 이름으로 흔히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을 통해 화가 카라바조가 카라바조란 지명으로 불리게 된 이유를 미루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시 카라바조가 도제로 지낸 밀라노의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화실에 이미 미켈란젤로란 이름을 사용하는 다른 도제나 화가가 있었으며 따라서 그의 이름과의 중복으로 인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카라바조란 지명으로 불렸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란 이름에 대해:
미켈란젤로(Michelangelo)는 히브리어 이름(Hebrew name) 미카엘(Michael, 신을 닮은 자)과 그리스어 이름 안젤로(Angelo, 메신져, messenger)의 합성어로 이탈리아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
세 번째, 밀라노가 큰 도시이기 때문에 작은 마을의 지명인 카라바조로 불렸을 것이다.
또 다른 버전은 카라바조가 로마에 도착한 후의 상황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당시 로마는 ‘영원의 도시’라고 불리고 있었던 세상의 중심이었기에 이탈리아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전역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모여들었던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들 예술가들 중에서는 밀라노에서 온 화가들이 있었으며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이 다른 화가들의 이름과 혼동될 여지가 있는 흔한 이름이었기에 중복의 우려가 없는 작은 타운의 지명인 ‘카라바조’를 미켈란젤로 메리시의 출신지 이름으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실 밀라노는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 있는 하나의 도시로서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도, 비록 로마만큼은 아니었지만, 로마에 버금가는 명성을 가진 대도시였다. 따라서 당시 로마에는 많은 밀라노 출신의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었을 것이기에 밀라노를 출신지의 이름으로 사용하기에는 카라바조뿐만이 아니라 그들 모두에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름을 말하더라도 금방 알아듣기 어려운 작은 타운 출신의 화가인 경우에는 그 타운의 지명으로 이름을 대신해서 사용하는 반면에, 큰 도시 출신의 화가의 경우에는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간에 카라바조를 연구하고 있는 연구자에게 카라바조의 이름에 대해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들은 듣기에 따라서는 그럴듯하게 보이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흥미를 돋우기 위해 누군가 지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것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록 어떤 일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록이 꼭 사실만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는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대개의 경우 기록이란 것에는 그것을 옮겨 적은 이의 사상과 추측에다가 몇몇 상상들이 원래의 사실들과 혼재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기록들은, 비록 그것에서 상당한 추측의 잔재가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분명 그랬을 법하여, 사실이라고 인정하여도 될 만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역사’ 또는 ‘역사적 사실’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예술에 있어서 그런 것들은 ‘예술사’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어쨌든 기록과 관련되어 얘기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사실은 “기록은 옮긴이의 생각과 사상을 무척이나 닮기 마련이다.”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화가 카라바조가, 카라바조라는 작은 지역의 지명으로 불리게 된 것에 대해서는, ‘빈치라는 지역 출신의 레오나르도’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지명을 포함한 이름이나 ‘다 빈치’라는 지명만으로 불리게 된 사례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사실일 것 같은 추정의 잔재들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의 진위에 대해서는 오직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카라바조 자신만이 분명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카라바조의 이름의 유래에 관련된 세 가지 견해에 대해: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카라바조란 이름의 유래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또는 견해)’ 중에서 일부는 다른 자료들을 기반으로 정리한 것이지만, 상당 부분은 저자의 카라바조에 대한 연구와 생각을 정리한 것임을 밝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