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한 마리가 부지런히 기어 다닌다
가만히 보면
검은 낚싯줄을 짧게 잘라 붙인 것 같은
마디진 가는 다리를
벌새의 날개 짓 같이 필사적으로 퍼덕이고 있다
깍지를 낀 양손으로 다리를 당겨 모으고
등을 굽혀 내려다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다리에 난 쥐를 참는 사이
붉게 물든 구름이 제 무게를 못 견디겠다는 듯
물기를 잔뜩 머금은 장미 꽃송이처럼
땅을 향해 구개를 숙이고 있다
그저 몇 걸음 되지도 않는
구불구불한 실선을 따라 개미는
해질 때까지 기어 다닌 것이다
어느 날인가부터 있어야만 하게 된 이곳은
뿌옇게 흐린 하늘의 달빛보다 더 밝은 땅의 가로등과
그의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무수한 형상들과 현상들이
낯설게 늘려져 사방에서 빼곡하게 반짝이고 있다
생각을 더듬어 보면 이곳에 있게 된 그날부터
하늘은 늘 짙은 회색이었고
부족한 수면으로 무언가를 꿈꾸는 것은
거추장스러운 잡념이 되어버린 지 오래이다
안개 매캐한 새벽이면
마른 구역질로 눈을 뜨고
튀어 나올 듯 하다가도 이윽고 삼켜지는 마른기침이
그의 다리를 더욱 가늘게 만들고 있다
바람이 분다
늘 그렇듯이 인도를 덮고 있는 네모난 블록 위에서
구겨진 종이뭉치가 방향을 잃고 나뒹굴고 있다
때 아닌 마른 나뭇잎 몇 조각이
바람을 따라 서걱거리고는 있지만
익숙한 소음이 금세 묻어버린다
개미 한 마리가 가던 길을 멈추고 선다
미간을 찌푸리며 하늘을 훔쳐본다
그곳에서 파란 하늘을 본 듯하지만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 어지러움 때문인 거야
- 괜히 하늘을 올려다봤어
기억에 두지 않는 것이 더 편안하다는 것을
개미는 이미 알고 있다
어느 날 개미는 생각한다
-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 같아
주머니에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손을 쑤셔 넣어 뒤적거려보지만
나무토막 같이 딱딱해진 몸뚱이의 파편이
손끝을 아리게 할 뿐이다
생각이란 걸 하려 잠시 애를 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언제부터 그랬던 것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그것은 떠나올 적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잃어버린 추억의 한 조각인 것 같기도 해다
- 애초부터 비어있지는 않았을 거야
좀체 알 수 없는 그런 날이
어제와 그 어제처럼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개미는 ‘나’라는 것 따위는 잊어버릴 만큼
현명하고 똑똑하다
그래야만 더 편해진다는 것을,
그것이 더 이성적이라는 것을 개미는 알고 있다
안다는 것이 때로는
체념이라는 환각제라는 것 또한 알기는 하지만
개미는 그 중독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개미는 다시 부지런해진다
아침마다 구토와 마른기침으로
힘겹게 눈을 뜨지만
또다시 밤이 늦어지도록 기어 다닌다
그런 개미의 얼굴에서는 결연함이 서려있다.
개미는 현명하고 부지런하긴 하지만
사실 그리 똑똑하지는 않은 것 같다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 없는 그의 바쁜 걸음은
마치 생각하는 것조차 잊어버린 듯해서
어쩌면 멍청하다고 보는 편이 옳을 수 있다
뉴욕에서, 고일석(Dr. Franz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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