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미술에 있어 당대 최고의 권위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델 몬테 추기경의 저택에서 머물던 시기의 카라바조는 추기경의 후원과 도움을 통해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그렸다. 델 몬테 추기경은 '메디치 가문의 로마 사자(使者)'로서 메디치 가문을 대표하고 있었다. 메디치 가문(family of the Medici)은 피렌체에서뿐만이 아니라 로마에서도 최고의 가문이었다.
델 몬테 추기경의 격려를 받아, 카라바조는 1590년대 중후반(mid-to-late 1590s) 경에 투스카니(토스카나)의 메디치 대공(the Medici grand duke of Tuscany)을 위해 두 점의 그림을 그렸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바쿠스>(Bacchus, 박카스, c.1596, 95cm×85cm, Uffizi, Florence)와 <메두사의 머리>(Head of the Medusa, 1597, 60cm×55cm, Uffizi, Florence)가 그것이다.
불가사의하다고 할만큼이나 미묘하고 신비로운 이 두 점의 작품들은 카라바조의 독창성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이다. 카라바조를 얘기함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독창성’이다. 카라바조의 모든 작품들은 독창적이다. 너무 독창적이기에 신비롭다거나 불가사의하다는 표현을 덧붙이게 된다. 독창성은 카라바조의 트레이드 마크(trademark)라고 할 수 있다.
카라바조는 연하의 친구이자 시칠리아 출신의 화가인 마리노 민니티(Mario Minniti)를 모델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바쿠스> 또한 마리오 민니티를 모델로 삼아 그린 작품이다. 카라바조가 1600년 이전에(로마에서의 초기에) 마리오 민니티를 모델로 그림들을 그린 것에 대해 "당시 카라바조가 모델을 구할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에 가장 친한 친구이자, 6살이나 연하인 마리오 민니티를 모델로 삼았다."라는 문헌들이 있다. 한 마디로 ‘돈 문제’로 인해 마리오 민니티를 모델로 삼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라바조가 <바쿠스>를 그린 1596년 경에는 이미 델 몬테 추기경의 후원을 받고 있었기에 마리오 만니티를 모델로 삼은 것이 순전히 '돈 문제' 때문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오히려 카라바조는 자신이나 일반적인 이탈리아인들과는 달리 둥근 형태의 얼굴(moonfaced)을 가진 마리오 민니티에게서 신비로움과 같은 색 다른 느낌을 받았을 수 있다. 어쨌든 1596년 작 <바쿠스>에서 마리오 민니티는 저잣거리의 여관에서 손님에게 와인을 제공하는 남성 접대부(매춘부)로 묘사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세속적인 해석에 따르면 바쿠스가 권하고 있는 와인은 질 낮은 싸구려 와인이며 와인잔과 와인병 또한 이와 마찬가지여야 한다. 또한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바쿠스의 와인잔과 눈길이 향하고 있는 방향이 화면의 정면이기에, 와인을 제공하려는 대상이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즉, 바로 우리가 카라바조의 바쿠스가 남성 접대부로 일하고 있는 여관의 손님인 것이다.
그러나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카라바조의 <바쿠스>를 이와 같이 세속적인 시선으로 해석하려 드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임을 깨닫게 된다.
소년의 표정은 신중하고 사려 깊으며 눈빛은 깊고 그윽하다. 왼쪽으로 기울어진 그의 자세는 편안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그가 어리기는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며, 모든 것을 다 들어 주고, 어떠한 것도 다 이해해 줄 것 같은, 넓은 아량을 가진 원숙함이 느껴진다. “그는 대체 누구이지?”, 궁금증이 일어난다.
포도잎과 덩쿨을 둥글게 말아서 만든 머리에 쓴 화환(vine-leaf wreath)과, 현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세속의 인간을 의미하는 상하고 벌레 먹은 구멍이 있는 사과(worm-holed apples)와, 신성한 구원을 의미하는 포도가 섞여 있는 과일 바구니는 솜씨 좋은 예술가의 손길이 간 듯 잘 정돈되어 있다. 이를 통해 그림의 주인공 바쿠스가 한낱 술주정뱅들이나 접대하는 질 낮은 남성 접대부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카라바조의 바쿠스는 누구란 말인가.” 카라바조의 바쿠스는 싸구려 여관에서 일하는 접대부가 아니라, 향기로운 와인을 가득 준비하고서는 손님의 방문을 환대하고 있는 고귀한 집의 주인이다. 바크스에 손에 들려 있는 입 넓은 커다란 잔에는 와인이 넘치도록 가득 채워져 있고 투명한 병에 담겨 있는 와인은 아무리 마신다 해도 그 바닥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그 집이 바로 세속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가려 하는 천국이며 그리스도의 집이다. 영원한 구원의 기쁨을 제공하는 그리스도가 바쿠스의 형상으로 세속에 나타난 것이다. 그림을 통해 카라바조가 생각한 그리스도의 집은 대성당이나 귀족의 저택처럼 너무 화려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려하다는 것은 세속의 삶이 만들어 낸 지극히 계층적인 개념이다. 하루 하루를 근근히 살아가야만 하는 일반 대중에게 그리스도의 집은, 문 안으로 들어서기에 주저하지 않아도 되고, 배 고프지 않을만큼 먹을 수 있고, 기분이 좋을만큼 취할 수 있는, 편안한 곳이어야 할 수 있다.
카라바조의 <바쿠스>를 세속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경을 저지르는 일이 된다. 카라바조는,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에서 고귀한 신성함을 찾아낸 독창적인 화가이다. 카라바조는 세속적인 것과 신성한 것이 그리 먼 곳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카라바조의 그런 독창성은 사물과 현상을 꿰뚫어 보는 천재적인 눈과 창의적인 해석에서 발원한 것이다.